사랑은 인류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가장 고귀한 가치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많은 경우,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잘못이나 허물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성경에서도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말하며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개인적인 관계에서 용서는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용서하는 사람 자신에게도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주는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용서는 분명 사랑의 아름다운 한 얼굴입니다.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과연 모든 상황에서, 모든 잘못에 대해 무조건적인 용서만이 사랑의 유일하거나 가장 완전한 형태일까요?특히 사회적인 맥락, 예를 들어 범죄와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단순히 용서하는 것만이 최선일까요?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범죄가 증가하고 그 수법이 잔혹해지면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인권 보호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경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랑’이라는 명제가 과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릅니다.어쩌면 용서보다 더 큰, 혹은 용서와는 다른 차원의 사랑은 ‘정의를 행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의는 단순히 복수나 응징이 아니라, 잘못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묻고,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여 미래의 잠재적 피해를 막는 행위를 의미합니다.칸트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용서는 ‘정의에 대한 애정의 완화’로 이해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용서가 정의의 원칙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정의의 엄격함을 다소 누그러뜨리는 측면이 있음을 시사합니다.정의를 행하는 것이 왜 사랑일 수 있을까요?첫째, 정의는 피해자에 대한 사랑입니다. 범죄 피해자는 신체적, 정신적, 물질적으로 큰 고통을 겪습니다.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가해자에게만 관용을 베푸는 것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잘못에 대한 명확한 심판과 그에 따른 형벌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정의가 실현되었음을 느끼게 함으로써 치유의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용서만으로는 피해자의 감정을 완전히 가라앉히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정의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둘째, 정의는 사회 전체에 대한 사랑입니다. 범죄에 대해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는 잠재적 범죄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인식이 퍼진다면 사회 질서는 무너지고 불안이 만연하게 될 것입니다.정의로운 심판과 형벌은 범죄 행위에 대한 분명한 경고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예방하는 효과를 가집니다. 이는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행위이며, 사회 공동체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입니다.셋째, 정의는 가해자 자신에게도 필요한 사랑일 수 있습니다. 물론 범죄자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성찰과 변화는 일어나기 어렵습니다.합당한 심판과 형벌은 가해자에게 자신의 행위가 타인과 사회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속죄하며,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때로는 엄격한 심판이 가해자 스스로를 위한 ‘쓰디쓴 약’과 같은 사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완전한 정의’를 추구할 때,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에 비해 큰 벌을 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정의의 실행이 가해자에게는 고통스러운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고통이 성장의 발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물론 정의를 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신중해야 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복수심에 기반한 정의는 또 다른 폭력과 불행을 낳을 뿐입니다.진정한 정의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가해자의 인권 또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존중되어야 합니다. 또한, 심판과 형벌만이 정의의 전부는 아닙니다.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고,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피해자의 회복을 돕는 다양한 지원 역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요소들입니다.결론적으로, 사랑을 단순히 ‘모든 것을 용서하는 감정’으로만 한정 짓는 것은 사랑의 풍부하고 다층적인 의미를 간과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관계에서의 용서가 중요한 사랑의 형태라면, 사회적인 관계에서는 ‘정의를 행하는 사랑’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며, 어쩌면 미래를 위한 더 큰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잘못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묻고, 피해자를 보호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공동체 전체의 안녕과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행위입니다. 이는 단순히 차가운 법 집행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따뜻하지만 단호한 의지의 표현입니다.따라서 사랑은 용서와 정의라는 두 날개를 모두 가지고 날아갈 때 비로소 가장 높이, 가장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용서가 개인의 마음과 관계를 치유하는 사랑이라면, 정의는 사회 공동체 전체를 건강하게 지탱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 두 가지 사랑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따뜻하고 안전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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