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대를 넘나들며 함양군 휴천면 송전리에는 신비하고 성스러운 신화 속 이야기로 구전되는 얘기와 실체가 희한하게도 딱 맞아떨어지는, 동화보다도 더 신비롭고 또한 확실한 역사적 증거물이 존재한다.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이야기의 시작은 1350여 년을 거슬러 함양군 휴천면 엄천강 상류에 자리한 ‘용유담’과 인근 산중턱에 자리한 <마적사>에 얽힌 사연이다. 용유담은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월 8일까지 국가 명승지로 지정 예고되었으나 지리산댐 건설 발표로 보류되었고, 이후 반대 여론으로 댐 건설은 무산되었다. 지금도 태초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천하절경이다.함양인이라면, 특히 휴천면민이라면 다 아는 <마적사> 사찰의 터와 유적이 있고, 여기에 마적사의 주인인 마적도사와 용유담에 얽힌 신비로운 전설과 존재하는 실체가 맞물리며 놀라운 진실을 들려준다. 마적사터, 마적사의 우물, 배나무 그루터기, 깨어진 장기판, 주춧돌 등 다양한 유물과 흔적들이 지금도 보전되고 있다.659년(신라 무열왕 6년), 마적도사는 용유담에 이르러 마적사를 창건하고 신통한 당나귀와 함께 생활했다. 나귀는 마적도사의 도장이 찍힌 쪽지를 지고 시장에 다녀왔고, 다리를 놓아 엄천강을 건넜다고 한다. 혹은 9마리 용이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도 전해진다.어느 날 마적도사는 장기를 두느라 장을 보고 돌아온 나귀의 울음을 듣지 못했고, 나귀는 결국 지쳐 죽고 말았다. 이 나귀는 핏빛 바위로 변했고, 사람들은 그 바위를 ‘나귀바위’라 불렀다. 마적도사는 여덟 마리 용을 쫓고, 장기판을 던졌는데, 그 조각이 용유담 곳곳에 흩어졌고 마적사터에는 지금도 반쯤 깨어진 장기판이 남아 있다.1962년 엄형휴 함양군수 부임 후, 천왕봉로(옛 마유선)를 개설하던 중 송전 주민들이 나귀바위를 폭파했는데, 그 안에서 나귀방울 16개가 쏟아졌다는 기록과 증언이 남아 있다. 방울은 7명이 나눠 가졌으나, 며칠 뒤 모두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휴천면에서 회자되는 미스터리다. (당시 송전리 새마을 지도자 신동록씨의 증언)마적도사의 유물과 문화유산 그리고 오늘의 발굴마적사는 법화사(문정), 엄천사(동호)와 유사한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마적도사는 절을 떠나며 배나무를 심으며 말했다.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내가 산 줄 알고, 죽으면 나도 죽은 줄 알아라.” 배나무는 13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디고 사라호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지금은 그루터기만 남아 있다.황백합자(83세) 씨는 “배가 맛있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던 해 태풍으로 쓰러졌지만 다시 싹이 났다”고 기억한다. 남편 김성수 씨와 함께 마적사터에서 63년을 살아온 이들 부부의 증언은 휴천향토문화연구회와의 인터뷰에도 기록되어 있다.용유담에는 전설을 담은 <구룡병풍>과 <가사어> 이야기도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소실된 소병풍 외에도, 눈먼 용 한 마리만 남기고 여덟 마리를 쫓아내는 모습을 그린 대병풍은 국보급으로 평가된다. 가사무늬 비늘을 가진 물고기 ‘가사어’는 여름에는 마천면 달궁 못으로 서식지를 옮긴다고 한다.문정 법화사의 소실 후, 구룡병풍, 마적도사의 철장, 도장(탑인)은 대포의 법화사로 옮겨졌고, 결국 법화사 주지 석지명 스님이 성보박물관에 보관을 의뢰했다. 구전과 기록에 의하면 세 유물이 모두 함께 해인사로 옮겨졌다고 한다.이에 필자는 휴천향토문화연구회를 결성하고 문화재 탐방에 나섰으며, 성보박물관 관람 허가를 받아 드디어 실물 확인에 성공했다. 수장고 깊은 곳에서 빛을 발하던 구룡병풍은 놀라울 만큼 생동감 있게 용들의 형상을 담고 있었다. 300년 전 작품으로 고증되었으며, 일부는 “레이저 광선”과 같은 묘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1층 전시실에서 마적도사의 도장(탑인)도 발견했다. 구전과 문헌만을 의지해 찾아낸 귀중한 문화재는 700년 전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철장(쇠지팡이)은 아직까지도 실물을 확인하지 못해, 그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마적도사와 마적사, 그리고 그를 둘러싼 수많은 유물과 증거는 더 이상 신화로만 치부할 수 없는 확실한 역사다. 도사라는 호칭은 신라시대 도교의 영향 아래에서 존경받는 고승에게 붙여졌던 표현으로, ‘마적대사’가 아닌 ‘마적도사’라 불리는 것도 충분히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이제는 이러한 문화유산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연구·발굴하여 지역의 귀중한 역사로 되살려야 한다고 필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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