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관찰시간
“선생님 이거 보세요.” 수업도 시작하기 전에 밭으로 달려가 저희를 부릅니다. 내가 심었던 작물이 얼마나 컸는지, 풀은 얼마나 자랐는지, 꽃이 무슨 색으로 피었는지를 알려줍니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소만을 지나 망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농부들은 모내기와 보리 베기가 겹치는 시기라 “발등에 오줌 싼다”라고 할 만큼 일 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지요. 아이들도 학교생활 틈틈이 텃밭으로 나와 풀을 뽑고 물을 주었다고 하니, 학업과 농사일을 병행하는 아이들도 농부들만큼이나 바빴겠구나 싶었습니다. 일상적으로 생명을 돌보고 자연을 관찰하는 아이들의 마음도 초록으로 가득 부풀어가고 있겠지요?
자연예술가
아이들과 함께 농사를 짓다 보면 텃밭 교사의 역할이 단순히 농사 기술을 전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른보다 자연에, 세상에 활짝 열려 있는 아이들은 종종 이곳에서 더 많은 발견과 재미 요소들을 찾아내곤 합니다. 열매가 풍선같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초는 얇은 겉껍질을 살짝 찢어 물을 채워 넣고 풍선 던지기 놀이를 한다거나, 고구마 잎을 제거하고 난 긴 줄기를 가지고 줄넘기를 하기도 합니다. 수업 중 몇 아이들이 조용하다 싶어 돌아보면 땅을 파고 물을 채워 넣어 곤충 워터파크를 만들고 있습니다.2주에 한 번 만나니 준비해 간 수업 내용은 많지만, 아이들의 발견에 눈길을 주고 함께 즐기는 순간을 함께 가지고 싶기도 합니다. 말랑말랑해진 마음에 아이마다 가지고 있는 예술가의 창조성이 춤추게 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텃밭 수업의 교안을 짤 때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텃밭에서도 이런 게 가능하구나!” 하는 상상력과 재미를 불어넣으려고 노력합니다.이번 주에는 한창 많이 나오는 오디와 밭에서 수확한 딸기를 따서 가져갔습니다. 딸기를 보더니 “딸기가 지금도 나와요? 겨울에 나오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어봅니다. “밭에서는 지금이 제철이란다” 알려주니 눈이 똥그래집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열심히 키워낸 토종 완두도 수확해서 삶습니다. ‘선생님들이 뭐하나~’ 유심히 쳐다보는 아이들. 완두의 달큰한 향기가 퍼질 때쯤 꼬챙이를 꺼냅니다. “우리 탕후루 해 먹자.” 비록 설탕 시럽은 없는 탕후루지만 모양만큼은 각자의 개성이 담겨 그럴싸합니다. 초록, 빨강, 검은빛의 조화를 생각해 보기 좋게 꽂은 친구도 있고, 오디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오디만 잔뜩 꽂습니다. 색뿐만 아니라 새콤달콤한 야생의 맛도 우리의 감각을 일깨워주기 충분합니다.예술적 감각을 발휘해야 하는 텃밭 팻말도 모둠별로 직접 꾸며봅니다. 여러 색 중에 마음에 드는 색을 골라 팻말 바탕을 칠하고, 자기 모둠만의 밭 이름도 정해봅니다. ‘힘이 짱이야’ ‘물 좀 잘 주라’ 등 이름도 개성 넘치지요.
든든한 지주대 같은 친구들
지난 수업 때 심은 작물들이 제법 자랐습니다. 토마토와 오이같이 지주대가 필요한 작물들이 고개를 못 들고 있네요. 도움이 필요한 작물들에게 손길이 갈 차례입니다. 자람새에 따라 지주대 세워주기, 끈 묶어주기, 순지르기, 북주기 등 끊임없는 관심과 돌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텃밭 교사들은 각각의 작업이 작물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알려주어야 하는데요, 이론적으로만 설명하면 집중력이 금세 흐트러집니다.
그래서 설명할 때는 아이들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반에서 친구들이 속상해할 때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도움도 잘 주는 친구 있나요?” 하고 물어보면 몇 친구들이 지목받습니다. 그 친구들은 이 반에서 지주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친구가 나와서 지주대 역할을, 다른 한 친구는 작물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끈으로 서로가 어떻게 연결되는 게 좋은지 생각해 보며 8자 매듭 묶기를 배우고, 바람이 세게 분다고 가정했을 때 작물이 어떻게 될지, 지주대 친구는 어떤 도움을 줄지 상상하면서 역할 놀이를 해봅니다.앞에 나온 친구들은 대본도 없는 즉흥연기를 훌륭히 해내고, 관객이 된 친구들은 배우의 연기가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중간중간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역할 놀이를 통해 서로가 지주대 같은 마음이 되어보는 것. 그렇게 작물을 돌보고 서로를 돌볼 수 있다면 세상이 한층 더 아름다워지겠지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