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숲’ 상림이 있는 함양에서는 천년 스승이라 일컫는 최치원을 비롯하여 김종직, 박지원, 정여창선생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19년 3월31일 안의장터에서 1,500여명이, 4월 2일 함양 장날에서 3,000여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이때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태서 의병장을 비롯하여 10.000여명의 의병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으니 함양은 충절의 고장이며 선비의 고장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함양의 안의면에 안의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안의고등학교는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고 다시는 나라를 잃어버리는 민족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일념으로 애국지사들과 안의면민들이 세운 학교입니다. 교훈이 ‘창건’이니 그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학교를 설립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안의고등학교는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습니다.   이런 학교가 급감하는 학령인구 때문에 공립학교로 전환하여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필자가 이 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것이 2010년 3월 1일입니다.   당시 이 학교는 전교생이 정원 180명에 현원 120명 남짓 그것도 인문계와 실업계 각 한개 반인 종합고등학교였습니다. ‘폐교만은 안 된다’는 일념으로 지역민과 동문들이 동분서주하고 있었고, 덩달아 신임교장인 저도 바쁘게 열심히 근무했습니다.     그래서인지 4년 임기를 마칠 때는 종합고등학교에서 일반계고등학교로 전환하여 정원 180명을 확보하였고, 입학생들의 입학성적도 내신 60%라는 목표를 거의 완수 했습니다. 대입성적도 한양대를 비롯하여 다수의 학생들이 서울과 수도권에 진학 하였으며 부산대학교 수학교육학과와 교육대학교 등 대단한 진학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인문계 1개 반에서 수학과에 4명이나 합격했는데 이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저의 37년 교직생활에서 교육장과 도교육청 과장, 학교정책국장, 교육국장을 통틀어 안의고등학교 교장 4년이 가장 보람 있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성공적인 학교가 된 일화 하나만 소개 하고자 합니다.2012년 3월 안의고등학교 입학식장에 “나는 못 배웠지만 너희들은 열심히 배워야 한다이”라는 말 한마디가 울려 퍼졌습니다.   순식간에 식장은 고요해지고 학생들 사이엔 숙연함이 감돌았습니다. ‘기부천사 염소할머니’가 학교에 1억원의 장학금증서를 전달하며 한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79세 할머니는 30대에 혼자가 되어 서울에서 식모살이를 하시다가 50대에 고향 안의로 돌아와 산골에서 홀로 염소를 키워 모은 전 재산 1억원을 고향 후배들을 위해 내놓았습니다. 염소할머니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자 많은 언론에서 ‘기부천사’라는 애칭으로 할머니의 선행을 칭송했고, 청와대에서도 대통령이 친서를 보내 왔습니다.   이렇게 할머니를 존경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여 할머니는 국민포상과 청룡봉사상의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할머니는 ‘나는 상 받을 자격이 없다’며 한사코 수상을 거절하시는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설득했지만 또 하나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상식에 가기 위해 ‘서울에는 언제 가 보셨어요? 입고 갈 옷은 있나요?’라고 물으니, 할머니는 그 때 입고 있던 일바지와 낡은 스웨터를 가리키며 “이 옷 입고 가면 돼요. 서울에서 30년 전에 내려와서 이곳을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다오.”   그 때의 말씀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선생님들이 마음 모아 한복을 준비했습니다. ‘족두리 쓴 이후 처음 입어본다’며 기뻐하시는 할머니를 모시고 시상식에 다녀온 기억이 생생합니다. 고속도로에서 ‘언제 길이 이렇게 좋아졌노?’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몇 년 전에 뵈었을 때 ‘교장선생이 우짠 일이고?’라며 반겨주시고 돌아오는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런 분이 계셨고, 지역민과 동문, 학부모, 선생님들의 큰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습니다. 한번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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