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초록한 잎들 사이에 하얗게 피어난 감자꽃이 나의 시선을 빼앗으며 마음을 심쿵하게 한다. 안개꽃을 연상케 하는 작고 쪼그만 녀석들이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라는 꽃말을 가진 감자꽃. 넓은 밭에 하얗게 피어나 꽃의 물결을 이루던, 즐겨 보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르며 마음이 따스해진다. 오래 두고 꽃을 바라보며 감상을 할까 하다가 꽃이 양분을 다 가져가서 감자 크기가 작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하나 둘 손으로 따주었다. 물을 자주 주어서인지 잎이 진하고 무성하다. 옆에서 내 손길을 지켜보시던 시아버지께서 잎을 잘라주는 게 좋겠다고 하시기에 가위로 잘라주었다. 며칠 후에 올라가서 보니 잘린 줄기 사이에 다른 줄기가 생기고 잎이 다시 잘 자란다. 어, 그런데 갑자기 감자와 대면하고 싶은 생각이 요동을 친다. ‘요 녀석 감자가 얼마 컸을까?’ 궁금하여 견딜 수가 없다. 쿵쾅거리는 마음을 간신히 다독이며 손으로 사알살살 파보았다. 아기가 엄마를 바라보듯 하얗고 어린 감자가 ‘까꿍’ 하며 나를 바라본다. “에구, 아직 너무 작아. 미안해” 그러고는 얼른 흙으로 덮어주었다. 감자를 캐고 나면 몇 년 만에 다시 고구마를 심어봐야겠다. 고구마 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하늘 정원 감자 캔 자리에 고구마를 심으려니번개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깃털처럼 가볍다여러 난전을 지나모종 파는 가게 앞에 이르러고구마 싹 왔느냐 물어보니오늘 들어 왔다며 상자 뜯어 보여 준다한 단 가격 팔천 원이라는 말에작년 반 단 삼천 원이 떠올라“많이 올랐네요. 심을 면적 좁으니 반 단만 주세요”그 순간 사정없이 귀를 때리는 벼락 한 줄기“마수인데 아침부터 재수 없는 여자가 붙어서 기분이 더럽네!”황당하고 어이없어 머뭇거리다정신 가다듬어 맞대응“나는 복 있는 여자요재수 없는 여자는 당신이나 하세요”쿵쾅거리는 가슴 간신히 붙잡고주르륵 쏟아지려는 눈물 겨우 달래며“장사 자~알 되겠네요. 나는 복 있는 여자요재수 없는 여자는 당신이 내뱉었으니당신이 가져 가시오”마음에서 울려 퍼지는위풍당당 행진곡에 맞춰아주머니 앞을 지나힘차게 행진하는 나는 복 있는 여자요(김채선 시집 [가슴이 바스락거린다] 중)시에서 참 용감하고 자기주장 강한 젊은 마음의 소유자를 본다. 세월이 지남일까 나이 들어간다는 걸까. 그 아주머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프지는 않을까 살아계실까 궁금해진다. 이제는 좀 더 여유롭고 성숙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이 일이 있던 그 해 그 날, 나는 기어이 어시장에 가서 고구마 순을 사다가 옥상 하늘 정원에 심었다. 백 년에 한 번 피어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귀한 꽃, 신비스러움을 품은 듯한 나팔꽃을 닮은 듯한 보랏빛 꽃을 피웠다. 끈기 성장, 풍요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고구마꽃이다. 다시금 고구마꽃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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