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지방소멸의 위기 한가운데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50%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지방소멸하면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단어인 세대간 불균형, 청년세대 유출, 출산율 감소, 전입인구 감소 등 함양군은 그 무엇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더 청년세대가 중요하다. 청년세대는 지역의 활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청년세대가 지역에서 재밌게 지내는 것은 청년인구 유출을 막고 청년세대 유입을 증가시킨다. 출산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년들은 함양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함양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함양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함양 청년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여행 좋아하는 윤하 씨, 인도에 가다박윤하 씨 이야기는 여행사부터 시작된다. 처음부터 그 일을 꿈꾸거나 준비했던 건 아니었다. 스물여섯 살에 인도로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지인을 통해 ‘혜초여행사’를 알게 됐다. 그 인연으로 인도 담당 직원으로 채용됐다. ‘혜초여행사’는 대중적인 패키지 상품보다는 오지 탐방이나 트레킹 같은 특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였고 그는 그중에서도 인도와 네팔, 스리랑카 등 서남아시아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단순한 전화 응대나 영업 같은 역할부터, 상품 기획과 현지 답사, 여행지 인솔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윤하 씨가 여행사에서 일하는 동안 인도는 일하는 곳이 아니라 반복해서 찾아가는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첫 배낭여행지였던 인도를 담당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고, 또 인도에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다른 여행사 직원과 인연을 맺고 결혼까지 이어지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우연이었다. 그 시절 윤하 씨는 휴가를 내서 다시 인도를 찾았다.
“쉴 때면 회사랑 관련된 건 쳐다보기도 싫은 게 보통인데, 인도에 또 갔어요. 그 정도로 좋았던 지역이었죠”
그렇다고 일이 늘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반복되는 일정과 잦은 출장, 수많은 민원 응대와 내부의 갈등 속에서 그는 점차 지쳐갔다. 나중에는 공황장애 증세가 나타났고, 결국 스트레스와 피로 누적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도 있었다. 그즈음 그는 원래 계획했던 5년을 채우고 퇴사를 결정했다.
“여행업은 처음부터 5년 정도만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젊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고 장기적으로 하긴 어려운 일이겠다 생각했는데 딱 5년이 된 해에 나오게 됐어요”
퇴사를 앞두고 윤하 씨는 아내와 함께 1년 가까이 계획을 세웠다. 아내와 날짜를 맞춰 2019년 10월 31일에 각각 퇴사를 했고 퇴직금을 이용해서 두세 달 정도 배낭여행을 다녀올 계획을 세웠는데, 그에 앞서 제주도에 잠깐 들러 기분 전환을 하고 출국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제주로 가는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공항에서 다시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공항 게이트까지 들어갔지만 더는 절대 나아갈 수 없었다.
“퇴사를 앞두고 1년 동안 제주도 여행과 배낭여행 준비를 하면서 얼마나 기대를 많이 했겠어요. 정말 꿈같은 일인데 출발도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제주도는 결국 취소하고 병원에 가게 됐어요”
병원에서 MRI를 찍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해도 이상 없다는 결과만 나왔다. 결국 윤하 씨는 정신과를 찾아 갔고 두 달 치 약을 처방받았다. 그런데 그는 약을 받자마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약을 버리고 떠났다. 약을 먹으면 병에게 지는 것 같은 마음, 그리고 배낭여행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여행의 첫 목적지도 인도였다. 이전에도 수차례 갔던 나라였고 익숙한 만큼 심리적으로 편한 공간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공황장애 때문에 현지 병원에 입원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몸 상태는 나아졌다가 다시 나빠지기를 반복하다 그렇게 간신히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다. 마침 그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귀국한 지 불과 며칠 만이었다.
퇴사 여행 이후 갑자기 홈리스 생활이 찾아왔다
계획대로라면 함양에 바로 귀촌해서 다음 단계를 준비하려 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계획이 전면 중단됐다. 불가피하게 서울에 조금 더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매물로 내놨던 집이 바로 팔렸고, 윤하 씨는 갑작스럽게 거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그는 길 위로 나섰다. 선택한 길은 해파랑길.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약 800km의 도보 길이었다. 처음엔 코로나 상황이 곧 나아지리라 생각했고, 걷는 동안 상황이 정리될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지만, 울산쯤 도착했을 무렵에는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었다 썼다 하면서, 그는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다. 응원의 메시지들이 도착했고, 커피 쿠폰과 치킨 기프티콘이 보내졌다. 낯선이들의 응원에서 위로를 받았다. 다양한 응원 중 예전에 여행으로 방문 했던 곳, 게스트하우스 사장의 응원도 있었다. 고성에 도착하면 게스트하우스에서 재워주겠다는 메시지였다. 박윤하 씨 부부는 흔쾌히 고성에 방문했는데 마침 주인이 아이를 낳으면서 여름 동안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두 달 정도 게스트하우스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한 상황을 만난 박윤하 씨 부부는 긴 코로나 시절 여름을 그곳에서 보냈다.
이후에는 김천으로 이동해 부모님이 운영하는 포도밭에서 농사일을 도왔다. 포도밭에서 새벽에 일어나 일하고, 다시 잠들고를 반복하며 한 달을 지냈다.
그 무렵 그는 일자리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중요한 기준은 숙식 제공이었다. 인제 펜션, 창녕 감나무 작업장 등 다양한 곳을 전전하며 코로나 시기를 버텨냈다.
결국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직업도 없고, 수입도 없는 상태에서 서울에서 처가살이를 시작했다. 방 하나를 함께 쓰며 눈치 속에 지내면서 무거운 감정들이 쌓여갔다. 그는 당근마켓 같은 앱을 보며 일자리를 찾아다녔고 다양한 일을 했다.
“파주에 출판단지가 있잖아요. 박스공장 아르바이트를 구하길래 아내와 함께 가서 BTS와 블랙핑크 앨범 박스를 접었어요. 박스 접이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정말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던 거 같아요”
그러던 중 함양의 행복주택 공고를 보게 됐다. 신혼부부 전형으로 신청했고 선발됐다. 그렇게 2021년 2월, 윤하씨는 드디어 함양으로 내려왔다. 오랜 방황 끝에 도착한 이곳에서, 그는 일단 살기로 했다.
마침내 도착한 함양…우연히 만난 달리기함양에 온 뒤에도 윤하씨의 생활은 뚜렷한 방향 없이 흘러갔고 생계를 위해 함양 내 육가공기업에 취직했다. 그 무렵 2022년 아내 김지은 씨는 지역 안에서 함양군청년마을 ‘고마워, 할매’ 활동을 하며 지역과 관계를 맺어가고 있었다.
“아내가 대외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관계 맺는 것을 잘하니까 제가 서포트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육가공업이 정말 체질에 안 맞았지만 돈은 벌어야 하니까 참고 했어요”
하지만 이 시기 아내인 지은 씨도 속이 타들어갔다. 자신이 외부활동을 할수록 그만큼 윤하 씨가 혼자 있는 시간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2023년 아내 지은 씨는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윤하 씨를 위해 ‘고마워, 할매’를 나와서 함양문화원 계약직으로 취업했다. 윤하 씨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다. 휴식의 시간에 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윤하 씨는 여전히 힘들어했다.
그러던 중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기안84가 마라톤을 뛰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그 장면을 보며 “마라톤 풀코스를 뛰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은 씨는 그걸 놓치지 않고 당장 윤하 씨의 이름으로 2024년 4월 대구 국제마라톤 풀코스 참가 신청을 해버렸다. 함양에서 아직 즐거움을 찾지 못한 윤하 씨에게 도전의 기회, 성취의 쾌감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풀코스를 뛰기 전, 윤하 씨는 준비 차원에서 2023년 11월 남원 춘향마라톤 하프코스에 먼저 참가하게 되었다. 뚜렷한 훈련 없이 출전했지만 1시간 36분 44초로 완주했을 때 스스로도 놀랐다. 그 기록을 계기로 그 전까지는 막연했던 대구 마라톤이 좀 더 구체적인 목표로 다가왔다. 처음엔 그냥 완주가 목표였지만 남원 춘향마라톤 하프코스를 뛰고 나서부터는 기록에 대한 욕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후 꾸준히 훈련하며 지난해 3월 성주참외마라톤 30km, 합천벚꽃마라톤 10km를 뛰며 조금씩 성과를 만들기 시작했다. 2024년 4월 대구 국제마라톤 풀코스에서 3시간 6분 18초 기록을 세웠다. 윤하 씨는 인생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 뒤로도 굵직한 대회에서 큰 상을 쟁취했다. 우연하게 시작한 취미에서 재능을 발견한 것이다.
아내 지은 씨는 힘든 일들을 딛고 새롭게 거듭난 윤하 씨를 돕는데 최선을 다했다. 유튜브 채널 ‘윤하씨’를 만들었고, 촬영과 편집까지 맡았다. 채널은 벌써 구독자 1500명을 넘겼다. 지난해 겨울에는 윤하 씨가 아식스 앰버서더 모집에 신청하도록 아내 지은 씨가 계속 독려했다. “내가 될 게 아닌데” 싶었지만 지은 씨의 도움으로 올해 윤하 씨는 아식스 앰버서더로 활동중이다. 그 후에도 계속 훈련 계획을 세우고, 윤하 씨가 지치지 않도록 곁에서 지원을 이어갔다.
달리기로 세상에 알려지기까지2025년 합천 벚꽃마라톤에서는 10km 전체 2위를 수상했고 상금은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전액 기부했다. 전국적으로 산불 사태가 심각한 상황이었고 “이 상황 속에서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기부 계획을 세웠다. 평소보다 더 상금 욕심을 냈던 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고 지리산 이웃 산청에 상금 전액을 기부할 수 있게 됐다.
함양 공설운동장에서 혼자 훈련하던 윤하 씨는 자연스럽게 제일고등학교 육상부와 마주쳤e다. 자주 얼굴을 보다보니 육상부 감독과 인사를 나누게 됐다. “마라톤 하세요?”, “기록이 얼마에요?” 같은 말들이 오갔고, 2025년 3월 서울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 37분 08초의 기록을 냈다는 사실을 감독이 알게 되면서 윤하 씨에게 도민체전 출전 제안을 했다. 올해 도민체전에서 윤하 씨는 10km 종목에서 33분 48초로 개인 기록을 갱신하며 군부 3위를 기록했다.
“바쁜 서울에서는 달리기를 제대로 못했을 거예요. 일하고 1시간 30분 걸려 퇴근하면 매일 술 마시러 다니고 다음날 출근 준비하기 바빴으니까요”
실제로 윤하 씨는 서울에서 공황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러닝을 했다가 일주일도 안되어 족저근막염만 얻고서 달리기를 포기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함양에서 여유롭게 살면서 체계적으로 러닝을 한 결과 여러 방면에서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우연히 달리기를 시작한 윤하 씨. 처음에는 성적이 올라가는 기쁨으로 달렸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삶의 방법을 만났다.
“지금 저도 귀촌해서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귀농, 귀촌의 범위를 좁게 생각하지 말고 넓게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해요. 저도 달리기에 도전 안 했으면 재능을 알 수 없었을 거예요.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재능을 찾으려면 도전이 먼저예요”
윤하 씨는 스스로를 기간제 아르바이트 인생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기간제 인생이에요. 10월 춘천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춘천 마라톤 기간제 인생인 거죠”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큰 계획은 없지만 적어도 마라톤이 윤하 씨에게는 중요한 정체성이 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저는 그냥 계속 이렇게 살아왔어요. 여행사도 계획에 없었고, 러닝도 계획에 없었지만 그냥 이렇게 흘러왔어요.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고 또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갈 거예요. 달리기로 인생 망한 사람은 못 봤습니다. 계속 달리면 적어도 건강은 남잖아요. 글을 읽는 여러분도 청정 지리산에서 많이 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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