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 꽃이 한창 개화할 시기인 요즘, 함양군 서하면 일대 사과나무에서 이례적인 생육 장애가 속출하고 있다. 열매 맺기 직전 단계에서 사과가 심하게 수축되며 상품성이 크게 떨어지는 이른바 ‘과실 수축 현상’이 농가를 덮치고 있다. 원인으로는 이상기후에 따른 급격한 기온 변화와 예년보다 늦은 냉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6월2일 함양군 서하면 신기마을에서 15년째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이종섭 씨는 “사과가 막 열매 맺고 자라야 할 시점인데, 벌써 40% 이상이 쪼그라들었다. 명확한 원인을 모르니 그저 막막할 따름”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과 재배는 일반적으로 개화기 이후 꽃과 열매를 솎아내는 과정을 거친다. 한 줄기에 여러 개의 열매가 맺히는 가운데, 농가는 가장 품질이 좋은 열매만 남기고 나머지를 솎아내는 방식으로 품질을 관리한다. 하지만 올해는 수축된 사과가 예년보다 눈에 띄게 많아지며, 정상적인 생육 관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씨는 “광범위하게 사과가 수축하는 현상은 처음”이라며 “이상기후가 문제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심각할 지 몰랐다”고 토로했다.
이번 현상은 지난 3~5월 동안 이어진 이상기후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서하면 일대에는 5월 초까지도 눈이 내리는 등 이상저온 현상이 지속됐으며, 이후 갑작스러운 기온 상승이 이어지면서 나무의 생리적 균형이 무너졌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올해는 벚꽃 개화 시기에 눈이 내리는 진풍경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러나 생육 장애보다 더 큰 문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농작물재해보험 체계다. 피해를 입고도 보상 기준이 까다롭고 절차가 복잡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 농민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사과의 경우, 수령(연생)에 따라 보험 가입 및 보상 기준이 달라진다. 수령 2년 미만일 경우 보험 가입 자체가 제한되며, 이후는 전년도 열매 수를 기준으로 예상 수확량을 산정해 기준치 미달 시에만 보상이 이뤄진다. 문제는 열매가 수축되면 상품성이 없더라도 보험사는 ‘착과된 상태’로 보고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피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농민들은 상품성 없는 열매를 솎아내지만, 이는 오히려 보상 대상에서 제외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 씨는 “보험사에 피해를 알려도 현장 방문은 항상 늦는다. 기다릴 수 없어 쪼그라든 사과를 솎아내면 피해가 인정되지 않고, 남아 있는 열매 수로 피해를 파악하니 주장하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함양군 관계자는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경남도와 중앙정부에 실질적인 지원책을 건의할 예정이며, 향후 기후변화에 대응한 재해 예방 및 관리 역량 강화에도 지속적으로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함양군은 지난 3~4월 발생한 이상저온 피해를 파악하기 위해 지역 과수농가를 대상으로 농업재해 실태조사를 실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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