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첫째주, 방방곡곡 진솔한 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체험 함양 삶의 현장’을 연재한다. 주간함양 곽영군 기자가 함양의 치열한 노동 현장 속으로 들어가 체험하면서 직업에 대한 정보와 함께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흥미롭게 전하는 연재 코너이다. <편집자 주>   5월의 끝자락. 봄의 숨결은 저만치 물러가고, 여름의 기운이 산골짜기를 타고 퍼지고 있다. 이미 산지에는 초록이 짙게 드리우고, 나뭇잎과 풀숲은 거칠 것 없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짐승의 발자국, 그리고 그 길을 쫓는 이들이 있다. 총 한 자루를 들고 어둠을 헤치는 유해조수 사냥꾼. 이번 ‘체험 함양 삶의 현장’에서는 함양군을 대표하는 유해조수 사냥꾼 최주현 씨와 함께했다.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을 지녔다는 그는 “대단한 일도 아닌데 무슨 취재까지 하느냐”며 쑥스러워했지만, 그 눈빛에는 날 선 긴장감과 강한 집중력이 깃들어 있었다. “더 어두워져야 합니다” 최주현 씨를 처음 만난 곳은 함양읍의 한 식당이었다. 처음엔 전직 군인처럼 거칠고 위압적인 이미지를 떠올렸지만, 실제 그는 조용하고 겸손했다. 군복이 잘 어울릴 체격에, 말투는 낮고 부드러웠다. “이 시기엔 멧돼지를 보기 어렵습니다. 번식기라 민가로 잘 내려오지 않거든요”식사 중 그는 조심스럽게 사냥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곧바로 따라 나서고 싶은 마음이 앞섰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지금은 너무 밝아요. 더 어두워져야 해요” 밤 9시가 넘어가자 그는 마침내 트럭으로 향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1톤 트럭에 희미하게 묻은 선홍빛 흔적들이 이 차량이 단순한 운송용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차량 안에는 길쭉한 총기 가방 하나가 놓여 있었다. 총은 최씨의 자비로 마련한 것, 가격은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 실탄은 한 발에 2500~3000원 정도다. 모든 총기와 실탄은 함양경찰서의 엄격한 관리 아래 놓여 있다. 헌터의 위치는 경찰과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장시간 움직임이 없을 경우 확인 전화가 온다. 그만큼 무기 소지에는 철저한 관리와 책임이 따른다. “쾅!” 한 방에 쓰러진 고라니 트럭을 타고 약 2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인적이 끊긴 산속. 풀숲은 무성했고, 달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암흑이었다. 최 씨는 차량을 멈추고 야간 열감지 망원경을 꺼냈다. 온열 신호에 반응하는 장비 덕에, 숲속 동물들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이동 중 갑자기 그의 손짓이 전해졌다. ‘쉿! 조용히.’ 우리는 차량에서 내려 그의 뒤를 조심스레 따랐다. 손전등이 약 50m 앞을 비추자, 두 개의 눈빛이 반사됐다. 순간, “쾅!” 하고 총성이 터졌다. 순식간에 끝난 사냥. 화약 냄새가 퍼진다. “명중입니다” 헌터의 말과 함께 우리는 목표물에 다가갔다. 아직 체온이 남아 있는 고라니 한 마리가 복부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시야 확보조차 어려운 어둠 속에서, 50m 거리의 목표물을 단번에 명중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수십 년 사냥하다 보면 이 정도는 감으로 잡습니다”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밤을 보낸 헌터로서의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고라니 사체를 트럭에 실은 뒤, 우리는 다시 이동했다. “기회가 된다면 멧돼지 사냥도 보여드리고 싶네요” 그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묻어 있었다. “멧돼지는 맹수입니다”   최 헌터는 과거 300근, 즉 약 180kg에 달하는 멧돼지를 여러 차례 사냥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만큼 위험한 순간도 적지 않다. “정면에서 돌진한 멧돼지에 튕겨 나가듯이 날아간 적도 있어요. 20m는 밀렸던 것 같아요. 기절한 채로 쓰러졌는데, 당시 동료가 없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죠” 그는 멧돼지를 “그냥 동물이 아닌 맹수”라고 표현했다. “일반인은 맨몸으로 절대 상대할 수 없습니다” 과거 선산 벌초 중 발견한 멧돼지 흔적을 떠올렸다. 묘소 주변이 온통 파헤쳐져 있던 풍경에, 당시엔 ‘맨손으로라도 싸워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철없는 상상이었음을 깨달았다. 놀라운 이야기 하나. 멧돼지는 고라니 사체를 뜯어먹기도 한다. 잡식성인 건 알려져 있지만, 초식동물이라는 인식이 강한 멧돼지가 육식을 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최 씨는 “그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친다”며 말을 이었다. “사람도 잡아먹었을지 모릅니다. 산에 다니다 보면 사람의 흔적은 있는데, 옷만 남아 있고 다른 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다시 이동하던 중, 고라니 한 마리가 가까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사격을 준비하는 사이 도망쳤다. “이 지역은 은신처로 적합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뭔가에 놀랐던 것 같아요” 그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바닥에 떨어진 탄피 하나가 눈에 띄었다. “누군가 이곳에 먼저 다녀갔네요. 사냥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습된 고라니가 바로 도망친 거예요. 보통은 거리를 좁히기 전엔 도망치지 않거든요.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네요” 그는 탄피의 위치와 고라니의 도주 방향만 보고도 이전 헌터의 이동 경로를 유추해냈다. 경험에서 비롯된 ‘고수의 눈썰미’다. 함양군에 등록된 유해조수 사냥꾼은 약 30명. 그러나 실제 현장에 자주 나서는 인원은 7~10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연간 약 2억 원의 예산 안에서 활동하며, 실적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 “초보 사냥꾼은 사냥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실적이 있어야 해요” 유해조수는 번식기를 지나면 민가로 내려와 농작물을 해치는 일이 많다. 하지만 민가 인근에선 총기를 사용할 수 없어 곤란한 경우도 있다. “도로까지 멧돼지가 내려왔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적이 있어요. 민가가 가까워서 발포할 수 없었죠. 신고자는 빨리 포획하라고 재촉하고, 법은 허용하지 않으니 상당히 난감했어요” 경험 많은 헌터들은 피해 규모만 들어도 어떤 동물이었는지, 심지어 암수까지 유추할 수 있다. “피해 양상을 보면 그림이 그려져요. 특히 멧돼지는 암컷과 수컷의 행동 패턴이 전혀 달라요. 암컷은 새끼를 데리고 다녀서, 주변을 마구 파헤치고 농작물 피해가 심각합니다. 반면 수컷은 혼자 다니며, 적당히 먹고 그냥 지나가죠”진짜 사냥꾼 무기를 소지한 사람들 중엔 허풍을 떠는 이들도 많다. 무용담처럼 과장된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최 헌터는 달랐다. 기자가 일부러 귀신 이야기나 기묘한 경험 같은 이야기를 유도해봤지만, 그의 대답은 “없다”는 말뿐이었다. 그의 실력과 태도를 보면, 정직하게 군민을 위한 일에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을 포획한다고 해서 기분이 좋은 건 아닙니다. 가끔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이런 포획 활동이 없으면 농작물 피해는 물론이고, 돼지열병 같은 병원체가 축사로 유입돼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요. 저는 그런 피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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