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시간을 간직한 다볕골 함양. 지역의 역사를 보존하고 주민들에게 이를 알려온 함양박물관이 개관한 지 올해로 11년 차다.지난해 12월 개관 10주년을 맞은 함양박물관은 그동안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과 문중에서 기증한 유산들을 상설전시하고, 6차례의 특별전시를 통해 지역의 공립박물관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과 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최근에는 영상과 QR코드를 활용한 스마트 도슨트를 도입하는 등 시대에 발맞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역 출토 유물, 지역에 보관·관리지난 2014년 12월 문을 연 함양박물관은 총 76억4200만 원(국비 21억, 도비 10억, 군비 45억4200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상림공원 인근에 건립됐다. 연면적 1900㎡(575평)으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지어진 이곳에는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영상홍보실, 어린이체험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지역에 공립박물관이 없었을 때에는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이 진주나 경주 등 타 지역의 국립박물관으로 보내져 보관·전시돼야 했다. 그러나 함양박물관이 건립되고 2016년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귀속문화재 보관관리 위임기관’으로 지정되면서 2017년부터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은 함양박물관에서 직접 보관·관리할 수 있게 됐다.함양박물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강현미 학예연구사는 “국가귀속문화재 보관관리 위임기관 지정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며 “지역의 유물을 지역에서 보존함으로써 함양의 역사를 총망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함양 유물 전시현재 함양박물관은 지역에서 발굴한 유물과 문중·개인이 기증한 기증품 등 5000여 점을 보관 중이다. 상설전시관에서는 이러한 지역 유물을 언제든 만나볼 수 있다. 특히 함양의 향교와 서원, 정자를 소개하는 등 선비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상백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다수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또한 매년 기획전시를 통해 지역의 유물과 문화유산을 알리는 특별한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지금은 지난해 10주년을 맞아 개막한 특별전 ‘함양, 시간을 그리다’ 전이 계속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타 지역 박물관에 보관·전시 중인 귀한 유물을 모아 선보임으로써 그동안 쉽게 보지 못했던 지역의 유물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특히 수동면 승안사지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동제사리합(청동으로 만든 원통 모양의 사리합)과 유리제사리병(유리로 만든 호리병 모양의 사리병), 최치원신도비에서 출토된 금동보살입상과 금동불좌상 등을 눈여겨볼 만하다. 국립경주박물관 등에 전시돼 있는 유물을 어렵게 대여해 꽤 긴 기간 함양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구석기 유물부터 문중 가보까지이외에도 2019년 1월~5월에는 함양군에서 발굴된 유물의 박물관 첫 귀속을 기념하며 ‘2019 다시 만난 함양 이은리’ 전이 열렸다. 함양군농업기술센터를 조성하기 전 표본조사와 정밀발굴조사에서 토기 등 192점이 출토된 함양이은리유적 유물을 전시하는 자리였다.또한 2019년 남계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하면서 2019년 11월부터 2020년 2월까지 ‘함양 남계서원’ 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어 2021년 9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집안 대대로 보관·관리되고 있는 가보를 전시했던 ‘가보(家寶) - 빛을 발하다’ 전을 열었다.이와 더불어 2023년 1월~10월에는 ‘귀향(歸鄕) - 함양상백리고분군’ 전을 개최했다. 이는 1972년 함양군에서 최초로 발굴된 유적인 상백리 고분군 출토 유물이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 및 관리되다가 문화재청의 발굴매장문화재 국가귀속 조치 통보에 의해 함양군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이를 기념해 열린 특별전시회다.또한 지난해에는 ‘함양 첫 사람의 발자국 - 함양 죽곡리 유적’ 전시가 열렸다. 2018년 함양 백연유원지 조성사업에 따라 함양읍 죽곡리에도 문화재 발굴이 진행되면서 발견한 구석기 유물을 전시했다. 특히 죽곡리에서 발견된 뗀석기 등 구석기 유물은 함양군 역사의 시작이 구석기시대부터임이 증명된 것으로 의미를 더했다.함양박물관에서는 유물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박물관학교 프로그램과 중·고등학생을 위한 직업·진로탐색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더불어 지역 축제와 연계해 3D 입체퍼즐을 활용한 남계서원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 영상 ‘산삼골 마법여행’ 방영 등도 진행했다. 또한 스마트폰으로 QR 코드를 찍으면 유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스마트 도슨트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다.
함양 대표 유물? ‘박여량 감재일기’함양박물관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 2억 원가량의 한정된 예산과 박물관을 운영하는 단 1명의 학예연구사 인력으로 운영이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연 4만 명가량의 방문객이 이곳을 찾고 있고, 더 많은 군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육을 진행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특히 함양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유물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이를테면 경주의 천마총 금관, 부여의 백제금동대향로, 청주의 직지심체요절이 있는 것처럼, 함양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대표적 유물이 없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엔 역부족이다.강현미 학예연구사는 “함양에는 수동면 출신 박여량 선생이 1608~1611년에 쓴 친필일기인 ‘감재일기’를 주목할 만하다”며 “광해군 당시 조선왕조실록에는 수록되지 않은 내용 등이 감재일기에 정확히 담겨 있어 그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한편 오는 9월 함양박물관은 국립진주박물관과 협업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한 국보전을 개최한다. 국보급 분청사기 8점을 함양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강 학예사는 “아이들이 교과서에서만 보던 유물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라며 “타 지역 사람들이 함양박물관을 찾는 것도 좋지만, 함양군민들이 먼저 이곳을 찾아주고 사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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