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령문화제를 훼방하던 궂은 날씨가 활짝 개었습니다. 꽃이 핀 것을 본 기억이 없는데 길바닥에 비에 떨어진 아카시아꽃이 수북해서 놀랐습니다. 일장 활극을 방불케 하는 정치적 이슈들이 넘쳐나는 바람에 뉴스나 유튜브에 너무 몰두했던 탓인지 달이 바뀌는지, 꽃이 피었는지도 모르는 사이 계절의 여왕 5월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지지자들의 애간장을 태우던 국민의힘 후보 단일화가 늦은 밤 당원들의 “집단지성”에 의해 활짝 갠 날씨처럼 깔끔하게 정리되더니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선이라는 민주주의의 축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국에 선거라는 민주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이번 선거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국민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 같기도 하고 굳이 자유라는 말을 민주 앞에 붙이는 고집이 안쓰럽습니다. 팬데믹의 후유증과 기후위기, 고물가 같은 난제에 더해 자신이 초래한 정치적 혼란으로 일상적 삶에 위협을 느끼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울분에 차 있다는 보도인데도 최소한의 자기 성찰도 없는 하나 마나 한 발언이 공허하지만, 우리 국민이 엄중한 정치적 선택을 앞에 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흔히 “우리나라는 정치가 문제”라고 자조하지만,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 어차피 비용이 많이 드는 제도입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상당한 수준의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이고 절박해 보이는 “마지막 기회”마다 유권자들이 집단지성을 통해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정치적 선택을 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1987년 직선제가 도입되고 처음 치러진 선거에서 분열한 민주진영이 준비가 덜 되었다고 보고 군인에서 보통사람이 된 노태우의 과도적 정부를 택하고 이어서 영·호남을 대표하는 두 민주투사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준 것은 집단지성의 선택입니다.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바보 노무현에게도 힘을 실어주고 경제위기에 처했을 때는 성공신화를 쓴 사업가에게 표를 몰아주었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탄핵 당하자 80년대 민주화를 주도했던 이른바 운동권에 나라를 경영할 기회를 주었습니다.5년이 지나 부동산 가격상승 등 설익은 정책들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이번에는 공정과 상식을 앞세운 검찰총장을 선택했는데 그만 사달이 났습니다. 전문분야에서 실력을 길러온 직업 관료들이 정치의 전면에 나섰지만 좋은 학교를 나오고 어려운 국가고시를 통과한 엘리트들에게도 정치는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어차피 정치는 주장과 해석의 영역입니다. 온 국민이 인정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누구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어떤 이는 배신했다지만그들이 통치하는 동안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오르고 문화적으로 주목받는 나라가 된 것이 사실이고 격렬한 정쟁을 치르면서도 무려 40년 동안 오직 선거로 최고지도자를 뽑아온 민주국가가 대한민국입니다.지금은 유권자인 우리 국민의 시간입니다. 주권자로서 각자 나름대로 평가하여 한 표를 행사하고 그 결과에 대하여 승복하고 다음의 “마지막 기회”가 올 때까지 응원하거나 참아주면 그게 민주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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