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법”이 있다. 곧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이 발생하지 않는 데에도 불구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 주지 않은 행위를 처벌하는 법률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비유로 가리킨 이야기이다. 강도를 만나 돈과 옷을 빼앗긴 채 길에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원수지간이었던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나귀에 태우고 여관으로 가서 주인에게 자신의 돈을 주며 치료를 해 주라는 감동적인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법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통용되고 있는 법이다. 그러나 이런 좋은 법이 있어도 우리가 실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법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보다 있어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법은 위기를 만난 사람을 돕고자 할 때는 위험이 발생하지 않아도 결국에는 나의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지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여기서 주목하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돈을 생면부지인 유대인을 위하여 사용한다. 바로 금전적, 시간적, 민족적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두움을 밝히는 촛불처럼 자신의 희생 없이 남을 돕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보편적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선한 사마리아인법”은 “불편한 사마리아인법”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나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번 필자가 쓴 “죄가 부끄러운 사회”가 되려면 우리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선한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청지기란 “남의 것을 대신 맡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남이 범죄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키고 관리하는 적극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필자는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키고 관리하고, 예방하고, 알리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의 이름을 “선한 청지기법”로 하여 범죄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프랑스 정부가 소셜미디어(SNS)를 운영하면서 각종 범죄 행위와 유해 콘텐츠를 방치했다는 이유로 텔레그램 창업자를 체포했다는 해외 소식을 전해 들었다. 메신저 앱인 텔레그램을 통해 사기, 마약 밀매, 사이버 괴롭힘, 조직범죄, 테러 조장 등 각종 범죄 행위가 이뤄지고, 유해 콘텐츠가 전파되고 있는 데도 이를 차단하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아 ‘범죄 방조자’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텔레그램은 암호화된 비밀 채팅 기능으로 보안성이 뛰어나 전 세계 사용자가 9억명에 이른다. 텔레그램은 한때 독재 국가에서 시민들의 비밀 소통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최근엔 가짜 뉴스와 불법 콘텐츠 확산의 주요 경로로 쓰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마침내 이 소식은 소셜미디어가 표현의 자유 도구인지, 가짜 뉴스 산실인지 해묵은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고 있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포털을 통한 가짜 뉴스, 허위 정보 유포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보고, 강력한 규제 장치를 마련해 왔다. 텔레그램 창업자의 체포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유럽연합(EU)국 중 독일에선 디지털 플랫폼에 유해 콘텐츠가 올라올 경우 24시간 내 삭제토록 한 ‘네트위크 집행법’을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어떤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 다음카카오 등 각종 포털을 통해 온갖 가짜 뉴스와 불법 콘텐츠가 유통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하니 “선한 청지기법”이 시급하다. 최근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온갖 가짜 영상이 유포되면서 인권침해, 명예훼손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들은 표현의 자유라는 주장을 내세워 가짜 뉴스, 허위 정보, 불법 콘텐츠 유통의 핵심 역할을 하면서도 언론 기관이 아니라면서 모든 책임을 회피해 왔다. 이제 우리도 유럽처럼 가짜 뉴스, 불법 콘텐츠 제작자와 유포자는 물론 인터넷 플랫폼에도 관리 책임을 엄중히 묻는 “선한 청지기법”을 제정하여 범죄를 방조하는 개인과 단체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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