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이 피었습니다”라며 친구가 단톡방에 장미 사진을 올렸습니다. 오래전 서울에 사는 고향 친구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핀 장미를 자랑하며 올린 것입니다. 그 장미가 어찌나 아름다워 보였는지, 나도 갖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수소문해 보니 ‘샬롯’은 영국의 장미 육종회사인 데이비드 오스틴에서 만든 장미로, 국내에서는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장미는 가방으로 치면 샤넬이나 디올 같은 명품이었습니다. 인기가 너무 많아 국내 대리점에서 온라인에 상품이 등록되면 5초 안에 품절이 되어버립니다. 전국의 장미 애호가들이 백화점 명품 오픈런 하듯이, 초시계를 보며 판매 당일 오전 10시가 되면 번개처럼 자판기를 두드립니다.
3년 전, 나도 운 좋게 ‘샬롯’ 주문에 성공했습니다. 그날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온라인 판매가 시작되었는데, 사전에 손가락 연습을 충분히 한 덕에 장바구니에 담고 배송 정보 입력, 결제 방법 무통장 입금 선택, 주문 완료 버튼을 누르기까지 5초가 걸리지 않았습니다. 유능한 피아니스트가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는 손가락보다 더 빨랐을 겁니다. 무통장 입금을 선택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핵심 기술이었습니다. 카드 결제를 선택해 카드 정보를 입력하다 보면 5초를 초과해 품절이 되어버리고,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구입해 애지중지 키운 ‘샬롯’이 어느덧 3년 차가 되었고, 올봄에 눈부시게 피었습니다. 장미는 3년 차가 되어야 제대로 된 꽃을 보여줍니다. 자랑하고 싶어 SNS에 “샬롯이 피었습니다~”라며 사진을 크게 올렸는데, 당황스럽게도 모두 샬롯이 아니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묘목을 받을 때 큼직한 칼라 태그에 ‘레이디 오브 샬롯’이라고 인쇄되어 있었고, 그 태그는 아직도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꽃 사진은 조명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여러 명이 자신들의 ‘샬롯’ 사진을 보여주며 아니라고 하니 아차 싶었습니다.
3년 전, 묘목이 잔가지가 많이 부러진 상태로 왔지만, 오히려 기뻤습니다. 부러진 가지 7개를 모두 삽목해서 잘 키웠습니다. 같은 장미를 8주나 키우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워낙 귀한 것이고 어렵게 구한 것이라 삽목 가지를 정성 들여 키워 정원 여기저기 심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두가 샬롯이 아닌 것입니다.
당시 샬롯 주문에 성공하고 인기가 덜한 ‘밧세바’라는 덩굴장미를 추가로 구입했는데, 업체에서 태그를 바꿔 붙였나 봅니다. 샬롯은 우리 집 정원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심었고, 삽목해 정성스럽게 키운 7공주도 여기저기 좋은 자리에 자리를 잡아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구색으로 구입했던 밧세바는 종일 해가 드는 열악한 자리에 심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게 바로 샬롯이었습니다.
정원에는 ‘레이디 오브 샬롯’이라는 이름표를 단 장미가 8주 있는데, 모두 밧세바입니다. 그리고 정원 한쪽에 별로 눈길도 주지 않고 키웠던, ‘밧세바’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장미가 내가 그토록 원했던 레이디 오브 샬롯입니다. 요즘 샬롯과 밧세바를 보면 속으로 “어쩐지~ 어쩐지”하며 혀를 찹니다. 사람이 참으로 간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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