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순진하고 순수하고 순박하기만 한 함양. 안녕하세요? 어느 날이었습니다. 읍내에 갔다 집에 왔는데 마당가에 낯선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습니다. 누가 찾아 왔나? 주위를 살펴보는데 두 청년이 별채 저 쪽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선글라스 끼고 가슴 떡 벌어진 풍채로 깍두기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경계를 세웠습니다. 별채를 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과정에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줌마들 30여명 쯤 놀러 와서 밤새며 술도 먹고 고스톱도 치며 놀다 가는 거죠. 아저씨는 그저 밥하고 술하고 안주 조금 준비해 주면 하룻밤 방세하고 수고비 이삼백만원은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아저씨 한 달에 두어 번 만 별채를 빌려주시면 몇 백 만원 그저 앉아서 버시는 겁니다. 시골에서 그런 돈은 생각하기 힘든 돈이니 잘 생각해 보시고 전화 주세요.” 이거 이거 대박이다. 가슴이 덜렁덜렁 덜컹덜컹 뛰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좀 뭔가 이상합니다. 청년들은 집 주위를 연신 살피며 ‘여기 장소 괜찮은데. 입구만 잘 세우면 문제없겠어’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내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바로 바로 너희들. 바로 바로 얼마 전 그 뉴스에 나왔던 주부 사기도박단?! 그들은 전화번호 하나 적어주고 사라졌습니다. 저녁에 아내에게 돈 좀 벌어보자며 슬며시 이 이야기를 하자 아내가 펄쩍 뛰는 것이었습니다. “당신 미쳤어요? 쇠고랑 찰 일 있어요? 신세 망치고 늙어가는 막판에 전국방송 타려고 그래요? 저번에 함양 어느 농장에선가 주부 도박단이 도박하다 경찰에 잡혔다는 방송이 있었는데 어휴 무서워라! 이제 이런 산골까지 와서 장소를 찾고 있으니 청정골 함양 이미지가 똥칠되어 가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함양에서도 도박하다 사람들이 잡혀갔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더욱이 양파철이나 추수철이 되면 농산물을 차떼기로 훔쳐갔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밭두렁에 쌓아 둔 양파는 물론 길가에 말리려고 놓아 둔 벼 나락도 아예 차떼기로 훔쳐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함양 사람들을 얼마나 어리석게 보기에 도둑님들이 여기까지 와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점심 때 함양 읍내 경남은행 근처 이층 건물에서 수십 명의 할머니들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손마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씩은 다 들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어르신은 휴지박스도 들고 있었고 어떤 분은 배낭에 한가득 무엇을 메고 있었습니다. ‘무슨 행사가 있었나요?’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응. 효도잔치가 있었어. 지금 몇 시 랑가? 아휴. 이를 어째. 버스 지나 가버렸겠구만. 곰실댁! 곰실댁!” 내용인즉슨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잔치가 있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났다는 것입니다. 거기 가기만 가면 경품이 팡팡! 공짜 선물이 팡팡! 거저 막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갈 때는 너도 나도 휴지에 라면에 사탕에 말 할 필요 없이 한가득 들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산청댁. 글쎄. 내일은 나훈아가 온대. 정말이라니까. 나만 초대권 5장 받았어. 그리고 1명 데리고 가면 미역 1봉지. 2명 데리고 가면 세제 1봉지를 준대. 그러니까 산청댁 나랑 내일 꼭 같이 가자구.” “에잇. 이런 미친 할망구. 요즘 세상에 공짜로 물건을 마구 주는 데가 어딨어. 난 안 가” “어이구. 이런 맹한 할매 같으니라구. 집안에만 처 박혀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알 수 있나. 이 효도행사는 말야. 대한민국 애국 봉사 뭐라더라 하여간 봉사단에서 나이 드신 노인들을 위해 나라에서 지원받아 전국을 다 찾아다니면서 무료로 경로위로잔치를 베풀어주는 거래. 뭐 알고나 말해야지. 그래서 나도 어제 그제 이틀 가보았거든.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른다니까. 멋지게 잘 생긴 사회자가 춤도 추고 우스운 말을 얼마나 잘 해 대는지 나 배꼽 빠진 줄 알았다니까. 어제는 태진아도 왔다 갔어” “태진아가?” 일절만 하겠습니다. 나훈아인지 너훈아인지 너너훈아인지. 태진아인지 터진아인지 모르겠지만 집에서 심심한 어르신들에게는 그야말로 그곳은 천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재미난 쇼도 보고 물건도 공짜로 받아옵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전부 가니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말입니다 아뿔싸! 어수룩한 시골 노인네들을 등 쳐먹는 흡혈귀 무리인 줄 누가 알겠습니까? 한번 갔다 하기만 하면 백에는 백 다 걸려들어 딸자식들이 귀하게 부쳐 준 용돈을 다 털려버리고 뼈 빠지게 일해서 조금씩 모아두었던 비자금 다 털리고 온다는 사실을 알면 어찌 통탄하지 않겠습니까. - 차고 있기만 하면 고혈압 당뇨 심장병 뇌졸중 다 막아주는 피 순환을 돕는 옥보석 칠보 전자 팔찌. 죽어 돈이 무슨 필요. 괴로운 내 몸. 딸자식이 지켜 주는 거 봤소? 내 몸 내가 지키소! 자. 만능 옥돌 황토 맥반석 침대. 요. 일주일이면 무슨 병이던 다 낫는 미국 유럽 독일 전 세계 심지어 유엔 아프리카에서도 특허 받은 만병통치약 나도 몰라 엑기스즙. 팔다리어깨무릎발 안 쑤시는 데가 없는 관절염 골다공증 영점영영영 일초에 물리치는 지네전갈뱀곰물개쓸개탕. 이 기막힌 약이 얼마냐. 298만원. 으악! 그거 다 받냐? 특별히 선전기간이라 백만원 뚝 짤라 198만원. 헉! 그거 다 받냐? 나도 부모님 모시는 형편이니 효도하는 심 치고 경품번호에 당첨된 사람에 한하여 100만원 뚝 짤라 98만원. 휴! 에라. 기분이다. 끝자리 잘라 90만원. 우와. 300만원짜리를 90만원에? 와. 나 경품추천에 당첨됐네. 이런 행운이 어딨나. 주민등록번호와 집 전화번호와 이름만 쓰면 돈 없어도 오케이. 여기요. 여기요. 어서 주세요. 이런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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