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차하겠습니다” 우인섭 선비(주간함양 대표이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우르르 22명의 유생들이 마차(관광버스)에서 내렸다. 우리나라 명산대천 지리산을 들기 위해 그 가슴 통과하는 지리산 제일문 오도재 정상 광장에 오늘의 유생들 도포자락이 땅에 닿자마자 바람이 제 옷섶을 열어 일두선생과 탁영선생을 보내 잠시 쉬어 가라고 가로막으신다.   두류시 일두 정여창   바람부들 너울너울 가벼이 나부끼니 사월의 화개땅엔 보리가 이미 가을이구나 두류산 천만 첩을 모두 다 둘러보고 외로운 배는 또 다시 강물 따라 내려가네 風浦泛泛弄輕柔 四月花開麥己秋 看盡頭流千萬疊 孤舟又下大江流     두류시 탁영 김일손   푸른 물결 넘실넘실 노젓는 소리 부드러워 옷소매 가득찬 맑은 바람 가을인양 서늘하다. 머리 돌려 다시 보니 정말 그 모습 아름다워 한가한 구름 흔적 없이 두류산을 넘어가네. 滄波萬頃櫓聲柔 滿袖淸風却似秋 回首更看眞面好 閒雲無跡過頭流   <일두 정여창 선생과 탁영 김일손 선생이 서기 1489년 함께 오도재를 넘어 용유담을 거쳐 두류산(이 당시는 지리산을 두류산이라 명명하였음)을 올라 화개땅을 바라보며 지은 시>   일두선생과 탁영선생을 모시고 머물러 참 행복했던 22명 유생들의 그 풍류에 법화산과 금대산이 도포자락을 휘날려 한순간 일두선생과 탁영선생이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스님들이 이 고개를 쉬엄쉬엄 넘어 가면서 세상의 경계를 넘어 깨달음의 세계를 들어서는 길로 가는 고개라 해서 이곳을 사람들이 오도재라 했던가! 그래서 오늘 유생들도 무언의 약속으로 어떤 깨달음이 있을까 기대하면서 지리산 산자락을 들었다. 가다가 잠시 발길 멈추어 첫 번째 숨고르기 하는 곳. 관음정(觀音亭) 정자가 가파른 산자락에 자리 잡고 일두선생과 탁영선생께서 어느새 샛길 가로질렀는지 좌정하고 있다. 그곳에서 풍류 읊는 소리를 튕구며 우리 일행은 발걸음을 한껏 돋우면서 지그시 바라본다. 황사에 싸인 산들은 먼 그대에 대한 그리움을 더듬듯이 만질 듯 보일 듯 산을 오르는 우리의 시야를 애 태운다. 일회성에 젖어 있는 21세기 인에게 어쩌면 그것이 더한 기쁨으로 오르는 발길이 바쁘다. 오늘 오르려고 하는 오도봉을 거쳐서 온 삼봉산은 현시대 바쁜 걸음을 옛 선인들의 닳은 짚신의 흔적을 찾으려 옮기는 발길을 포근히 풀어준다. 수많은 한숨을 낳은 부엽토. 그 세월을 이고 지고 오르는 유생들의 옷깃에 품어 오늘의 노래로 이곳에서만 살고 있는 바람이 찾아든다. 그 가슴 열고 보니 당신의 백성 평화로운 삶을 위하여 나라를 버리기로 결심한 가락국 마지막왕 구형왕의 숭고한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정기가 우리의 발길은 잠시 부여잡는다. 궁궐터를 닦아 놓고 여러 가지 여건이 여의치 않아 추성으로 옮겨 성을 쌓고 궁을 지었다. 결국 가락국이 입성하지 못한 빈대궐터 남았다는 일화를 더듬는다. 그 산줄기를 들어서니 빈대궐에 수백년 동안 잠겨 있던 궁궐문 삐거덕 열리면서 황송하게끔 수많은 궁녀들 거문고 켜는 소리와 함께 빗장이 스르르 열렸다. 우리 유생들은 그곳에 잠시 터 잡아 막걸리 한사발로 넙죽 재배하고 심각한 눈빛 되어본다. 주변에 3층 석탑의 부재가 있으니 그 당시 매우 큰 사찰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그 절 이름이 등구사라 하는데 지형이 거북과 같으며 넓은 그 등에 올라 앉아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촉동이라는 이름은 마을 뒤에 촛대봉이란 봉우리가 있어 지관들이 조천 납촉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일두선생과 탁영선생이 소곤거린다.     오도봉(1035.2m)은 인오조사께서 영원사 도솔암에서 깨달음의 득도를 쏟아 놓은 곳인데 오늘 우리와 함께 한바탕 놀아 보자 보챈다. 그 곁에서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두 분의 승전의 충성이 지금도 울림으로 다가와 살포시 속삭이며 우리 유생들의 심신에 보슬비를 내리고 있다. 세월의 인고가 여실히 드러나는 참나무 우듬지에서 일두와 탁영의 숙주나물을 무쳐 먹은 유생들이 각각의 엽록소로 얽히어 더 높은 햇볕을 받으려고 무수한 창 모양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 신선함이야 보는 이의 눈을 부시게 하여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합장하면서 선인들의 숨결이길 염원한다. 겨우살이가 유생들의 시선을 붙잡고 고통을 함께 저 황사에 날려보내자. 세상을 앓는 이를 조소하고 있다.   이제 삼봉산(1.187m)정상에 유생들이 하나 둘 쏙쏙 도착하니 어느새 일두 선생과 탁영선생께서 거북 등에 업혀 먼저 올라와 있다. 등구 마천 큰애기들이 서릿발 내리는 긴긴 겨울날 곶감 깎은 것을 함양읍내 장과 남원 산내와 인월 장에서 다 못 팔고 떨이하려 삼봉산 정상으로 왔다. 그 곶감을 사지 않으면 등구 마천 큰애기 시집갈 밑천을 준비 못할 것 같았다. 지리산 곶감을 한 상 안주로 차려놓고 막걸리 한 사발로 타는 목을 축이며 시 한 수 읊조리니 김윤세 유생 왈 “지금까지 이 오도를 지켜주신 신선들께 제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자”면서 넙죽 옷고름을 땅에 뉘인다.     오호라! 느림의 미학이 있었던 시간들 유유한 풍류가 있었던 선비들의 숨소리를 함께 하면서 오늘의 이런 시간들을 21C에 사는 시멘트 공해에서 그것을 향수로 느끼며 살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산을 오른다는 것은 선비정신 산천을 가까이 하고 염원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단연코 앞으로 22C 그 나머지 먼 시간에 선비로 살기 위한 고귀한 시간들이었다고 22명의 유생들의 웃음이었다고 감히 확신하는 산행이었다. ▲ 박행달 시인 “좋은 말로 할 때 다음 바래봉 산행에 오시오”라는 김윤세 유생의 말에 삼봉산이 까르륵 깔 깔 웃으면서 내려와 일상의 시간들로 제 그림자를 깔았다.     주간함양신문(news-hy@hanmail.net)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댓글0
로그인후 이용가능합니다.
0/150
등록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복구할 수 없습니다을 통해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
  • 추천순
  • 최신순
  • 과거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