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취업한 지 8개월째다. 모시던 어르신이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 원에서 어찌할 수가 없어 퇴소해야 됐을 무렵, 나는 지난해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서 많이 울었다. 경험 많은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위로해 주었다. ‘첫 정이라 그래’ 하면서... 이후로도 몇몇 어르신들께서 돌아가셨지만 그때처럼 울지는 않았다. 죽음도 원 생활 중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실제로 드라마에서처럼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돌아가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호흡을 내뱉으시는 것이 전부다. 사람이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기도할 뿐이다. 내 자신 돌보기도 벅차다고 이 귀한 섬김의 삶을 극구 마다하며 한 번도 요양보호사가 되리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이 내 본업이라 변명하면서 말이다.삶의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기보다, 다가오는 일을 하고 가야만 하는 곳을 갈 뿐인 시절이 오나 보다 생각되어진다. 마침내 그 일은, 혹 그곳은 내가 죽는 곳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고 살 때보다 아름다운 결실일 때가 많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사니 보잘것없는 나도 꽤 쓸모 있는 도구라는 것을 발견할 때가 문득문득 있다.‘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었구나! 일은 끝도 없이 어렵기만 한 게 아니었구나!’이웃이 아파할 때 손잡아 주면 되고, 눈이 마주치면 뭐 필요한 게 있냐고 물어보면 되고, 뭐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공감해주면 되는 것이다. 나의 기독교 신앙이 옳고 그름의 날을 서게 했다면, 요양원 일은 옳고 그름의 선을 희미하게 만든다. 원인은 치매라는 병 때문이다. 한 시간 전의 일도 기억을 못 하고 아무리 옳은 일을 하시라 권해도 못 알아들으시기 때문이다. 평생 살아온 좋은 습관은 조금 남아 있어도 선을 굵게 긋기가 쉽지 않다.유교적인 영향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더더욱 아이들을 엄하게 키웠는데, 때론 어르신들이 때 쓰는 아이들 같아 미리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옛날 버릇이 나올 것 같은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일을 하기 전의 모습으로, 삶의 끝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이의 도우미로 살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오랜 경력이 쌓여서 그런 건 아니지만 어르신들을 돌보면서 나는 내 자신도 돌보고 있기 때문이다.나의 본업인 전도는 영원을 심는 일이다. 곧 그 열매를 수확할 때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것도 몇 마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때에도 지치지 않고 힘을 내어서 계속해야 어스름한 저녁때쯤 생각지 않은 때에 열매가 맺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그러나 이 섬김은 경제적인 안정에 보태어 활기까지 유지되게 나의 삶을 도리어 돕고 있고 의미까지 더 짙은 색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피운 꽃이 아름다우면 키운 손길도 더 아름답게 기억되어지는 법이다. 물론 슬럼프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자신이 허술하고 부족한 사람이란 걸 알기에 ‘나는 진정 도움이 될 만한 자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한다. 갑자기 모든 일에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시간까지는 쭉 달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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