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님, 정원을 넘었습니다. 두 명이 더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담당자의 말 속에서 안타까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열 명 모집에 열두 명이라? 그리 불편한 인원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강의를 듣겠다고 신청을 했는데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그분들의 꿈과 열정을 배반하는 것 같기도 해서 모두 같이 하겠다고 했다. 전화기에서 “결정 잘 했다”며 반가운 목소리의 대답이 들려왔다.작년에 강의를 한 한 도서관의 러브콜로 이번 학기에 세 곳에서 글쓰기 문학 수업을 하게 되었다. 학생을 대상으로 소개받은 두 곳 중 한 곳은 이미 수업을 하고 있고 며칠 후에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으로 모 도서관에서 강의를 한다. 시니어 대상이라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일기 쓰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주제를 일기 쓰기로 잡은 것이다.일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 다른 글의 갈래보다 친근감이 있으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신청을 한 것 같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신청자 한 분 한 분이 대견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빨리 만나고 싶다.글의 종류 중에 일기라는 것은 아주 쉽고 간단하다며 무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글은 일기 쓰기가 기본이다. 글을 쓰는 선배들이나 강의하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일기를 꾸준히 쓰라는 이야기가 많다. 일단 일기를 써놓고 시간을 두고 열어서 그것을 수정해서 좋은 수필로 다듬을 수 있다. 그리고 시를 쓰더라도 시로 바로 쓸 수도 있지만 일기를 매일 써놓으면 그것을 보고 줄이고 고치고 퇴고해서 멋진 시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나는 중학교 시절에 소원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우리 집에 피아노를 두고 피아노를 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만년필을 갖는 것이었다. 쇼팽이나 베토벤 등 여러 음악가에 대해서 알게 되어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같은 반 반장 친구가 피아노 가방을 들고 피아노를 치러 다녔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그 소원은 이루지 못했지만 두 번째 소원은 이룰 수 있었다.처음 생긴 방송반에 뽑혀서 방송반 반장으로 방송을 하고 있는데,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방송반 담당이셨던 국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만년필이 많아서 하나 줄 테니 글 많이 써라.” 그날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선생님이 주신 것이라 그 만년필을 애지중지 아껴가면서 일기를 꾸준히 쓴 것이다. 그리고 몇 년 전 개인 저서를 내면서 그 일기장을 넘겨보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그 일기장을 바탕으로 에피소드를 찾고 글감을 찾아서 보탤 수 있었다.일기를 쓰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새롭고 멋진 삶으로 나아가게 하며, 온전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매일매일 쓰거나 일주일에 두세 번이라도 꾸준히 쓰다 보면 글쓰기 실력이 늘어난다. 생각을 정리하는 능력을 키워서 차분하고 정돈된 뇌를 가질 수 있으며,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 공책에 직접 손으로 쓴다면 우리의 뇌를 자극시켜서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조금만 신경 쓰고 공부한다면 일기를 통해 작가나 시인이 될 수도 있다. 일기 쓰기는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역사와 자서전을 쓰는 일이니 정말 멋진 일인 것이다.작가 중에는 일기를 써서 유명한 사람들이 있는데, ‘불안의 서’를 쓴 페르난두 페소아, ‘아미엘의 일기’를 쓴 아미엘, 그리고 ‘안네의 일기’를 안네 프랑크 등이 그렇다.페르난두 페소아의 일기는 생각해 봐야 할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으로 가득 차 있고, 아미엘의 일기는 작가의 내면의 방황과 고민을 통한 자기 성찰과 철학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며, 안네의 일기는 2차 대전 당시의 전쟁의 비참함을 알려주고 깨닫게 해 준다.유명 작가들처럼은 못 쓰더라도, 매일매일의 삶을 일기라는 형식의 글로 쓰다 보면 여러 가지 좋은 점도 있고 자식들에게도 남겨 줄 수 있으니 참으로 의미 있는 글쓰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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