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넷플릭스 드라마로 보고 있습니다. 오래전 재밌게 읽었는데, 드라마로 다시 보게 될 줄 몰랐습니다.
옛날엔 재밌는 책은 밤을 세워 읽었는데, 이제는 단 한 페이지만 읽어도 눈이 금방 피로해져서 던지게 됩니다. 마음대로 읽지 못해서 유감스럽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받아들여야지요.그래서 드라마로 다시 보는 ‘백년의 고독’은 뜻밖의 선물입니다. 화면 속 아름답고 기묘한 숨결로 원작의 느낌을 잘 그렸네요. 세상의 모든 사랑과 비극, 탄생과 소멸이 한 가문 안에, 한 마을 안에, 그리고 한 인간의 운명 안에 농축되어 있다는 것을 영상으로 잘 그려내었습니다. 마콘도는 어디에도 없는 마을이지만, 우리 모두가 품고 사는 삶의 은유이기도 합니다.‘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세상의 비밀을 풀어보겠다는 집념 끝에 서서히 광기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은, 음악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주제처럼 흥미롭습니다. 땅을 일구었고, 마을을 세웠지만, 끝내 자신의 고독과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갔습니다. 무너져가는 눈빛,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커다란 나무 아래 쇠사슬에 묶여 살아가는 장면은, 이 시대의 고독한 지식인을 떠올리게 합니다. 세상을 이해하고자 몸부림치다가 결국 자신만의 백년의 고독 속으로 사라지는 존재 말입니다.삶이란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황홀 사이를 오가는 긴 여정이고,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은 사랑하고, 살아냅니다. 나이가 들수록 책장을 넘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지만, 이렇게 드라마라는 다른 방식으로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며 읽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건강한 마음으로 세상을 꿈꿀 수 있으니까요. ‘백년의 고독’ 드라마는 백년의 독서입니다.
문득 ‘안나 카레니나’와 ‘죄와 벌’도 드라마로 다시 한 번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운명을 거스르려 했던 한 여인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걸었지만, 결국 세상과 충돌하며 부서지는 인간의 연약함을, 영상으로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난과 절망 속에서 스스로를 선택받은 자라 믿고 살인을 저지른 라스콜리니코프의 심리. 그가 끝없이 자신을 합리화하면서도 결국 죄책감에 무너져 가는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 안의 갈등과도 닮아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영상은 원작 못지 않은 감동을 줍니다.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또 놀랄 만큼 짧습니다. 눈이 침침해서 더는 읽지 못하는 책들을 이제는 드라마라는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오월은 나들이 하기에도 더없이 좋지만, 책 읽기에도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그리고 드라마 보기에도 멋진 계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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