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곡면 송평리에 자리한 ‘1번지 양봉원’. 이곳을 일구고 지켜온 김영조 씨는 올해로 양봉 경력 15년을 맞았다. 양봉업이라는 낯설고도 치열한 세계에 발을 들여 꿀벌과 함께 묵묵히 세월을 쌓아온 그는, 지금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뭐든지 1번이 안 좋습니까. 내 양심을 속이지 않고 제대로 된 걸 최고로 만들어 보겠다, 그런 마음이죠.”‘1번지 양봉원’이라는 농장 이름에는 김 대표의 고집과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 단 한 통으로 시작한 양봉은 어느덧 네 곳의 농장에 약 300여 통 규모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그가 양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소박하다. 지인의 이동양봉 일을 도우며 우연히 벌통 안에 수북이 쌓인 꿀을 직접 본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게 꿀이구나. 이걸 해보고 싶다.” 텅 빈 벌통 속에서 은은히 빛나던 꿀의 모습은 그의 삶의 방향을 바꿔놓았다.김영조 씨의 양봉은 단순히 꿀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시간과 수고가 더 들더라도 ‘숙성꿀’만을 고집했다.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꿀은 수분 함량이 높은 생꿀을 기계로 가열하거나 진공 증발시키는 농축 방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꿀벌이 벌통 안에서 수분을 조절해 자연적으로 숙성시킨 꿀만을 채취한다. 최소 13일 이상 숙성되는 이 꿀은 수분이 줄며 향과 영양이 깊어진다. 생산량은 일반 꿀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맛과 품질 면에서 그 차이는 분명하다.“숙성꿀은 먹었을 때 입에서 바로 향이 퍼지는 게 아니라, 속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는 매력이 있어요. 진짜 꿀맛을 아는 분들은 한 번 맛보면 계속 찾습니다.”양봉 4~5년 차 무렵, 김영조 씨는 꿀의 가능성을 더 확장하고자 ‘효소꿀’ 개발에 나섰다. 산삼, 오미자, 블루베리 등 다양한 재료를 꿀벌에게 먹여 해당 성분을 꿀 속에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방식이다. 꿀벌은 당분 외의 성분을 흡수하지 않고 꿀에 저장하기 때문에, 산삼꿀에는 실제 사포닌 성분이 그대로 살아 있다.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김 씨는 효소꿀 특허를 취득했고, 국내외 식품 박람회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특히 대한민국 식품대전에서는 국내외 바이어의 주목을 받으며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상수원 보호구역 규제에 막혀 공장 부지 확보에 실패하면서 수출 계약은 무산되고 말았다.“수출이 터졌다면 벌꿀 산업 전체에 큰 도움이 됐을 거예요. 특히 함양 지역 양봉 농가한테도요.”
김영조 씨는 좌절 대신 더 나은 제품을 위한 다짐으로 다시 꿀벌들과 마주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또 다른 위기, 꿀벌 실종 사태가 닥쳤다. 겨울철 벌통 안에서 조용히 지내야 할 꿀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농약, 드론 방제, 환경 오염 등을 원인으로 지목하며 “도시보다 오히려 농업 활동이 많은 산간 지역에서 피해가 컸다”고 덧붙였다.“꿀벌은 살아있는 공장입니다. 사람 손보다 정직하고 깨끗한 공장이에요. 건강한 벌이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줍니다.”그가 가장 열정을 쏟았던 시기는 효소꿀 개발에 몰두했던 시절이었다. 산삼, 오미자, 각종 약초를 먹인 꿀벌들이 만들어낸 꿀을 맛볼 때마다 느낀 기쁨과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모든 게 새롭고 재미있었어요.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시간이었을 겁니다.”
김영조 씨의 꿈은 단지 꿀을 파는 데 있지 않다. 꿀벌이 빚어내는 진짜 꿀, 자연의 힘으로 완성된 건강한 제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언젠가 다시 세계 시장을 향해 도전장을 내고 싶다는 바람도 품고 있다.“효소꿀이라는 개념이 아직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해외에서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언젠가 여력이 닿으면 다시 수출에 도전하고 싶습니다.”꿀벌들과 함께한 15년. 병곡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그의 양봉 인생은 여전히 천천히, 그러나 깊고 단단하게 숙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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