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읍 1교 사거리 천변길에 자리한 작은 카페 및 수제잼 가게 ‘캄포데하먕’. 통유리창 너머로 따뜻한 나무색의 바 테이블과 부드러운 조명, 은은히 퍼지는 잼 향이 어우러지는 이 공간은 단순한 수제잼 가게를 넘어 사람과 이야기를 담는 사랑방이자, 김아라씨가 빚어낸 삶의 결실이다. 아라씨가 처음 함양에 발을 디딘 건 2018년 여름, 우연한 여행이 계기였다. “비 오는 날 상림숲에 들렀는데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어요. 그 배경에 반했고, 지리산에도 올랐죠.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 ‘나 이곳에서 살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대구에서 수제잼 작업실을 운영하던 그는 오랜 시간 도시의 삶에 익숙해 있었지만, 늘 농산물을 가까이에서 다루고 싶다는 갈증을 품고 있었다. 산지와 소비지가 가까운 삶, 자연과 호흡하는 삶. 그렇게 ‘함양’이라는 이름이 점점 그의 머릿속에 또렷해졌다. 지난해 8월, 긴 준비 끝에 ‘캄포데하먕’이 문을 열었다. ‘캄포’는 스페인어로 초원을 뜻하고, ‘하먕’은 함양을 소리 나는 대로 표현한 이름이다. “처음엔 사람들이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묻기도 해요. 저는 함양 출신은 아니지만, 이 땅에서 나는 농산물로 식료품을 만들고 영감을 받으니, 자연스럽게 이 이름이 떠올랐죠” 아라씨는 덧붙였다. “‘캄포’는 또 다른 뜻으로 ‘광장’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가게가 사랑방처럼 사람들이 모이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가게 문을 열면 다양한 잼과 식료품 등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얼그레이 잼, 무화과 잼, 블루베리 밀크 투톤 잼, 흑임자 잼까지. 제철 과일을 중심으로 구성된 제품들은 인공적인 단맛 없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정제하지 않은 사탕수수 원당을 소량 사용해 건강까지 생각했다. “제가 위장이 예민한 체질이에요. 시중의 잼은 너무 달고 소화도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처음엔 저 스스로 먹기 위해 잼을 만들기 시작했죠” 작은 시작은 곧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이 되었고, 선물은 입소문을 타고 사업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취미였어요. 회사 다니면서 베이킹 하고, 잼 만들고, 청 담고. 그런데 다들 선물 받고는 너무 아깝다며, 이걸 가게로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에 나섰고, 도시를 거쳐 결국 그는 낯선 곳, 함양에 터를 잡았다. “가게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육아와 병행해야 했던 점이었어요. 처음 3년간은 지역 사람들을 알기도 어려웠고, 상가 계약부터 공사까지 모든 게 생소했죠. 천장 철거, 샌딩, 나무 재단, 페인트칠까지 거의 다 셀프로 했어요. 모든 게 제 손을 거쳐야 했어요” 그는 웃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두 달짜리 공사였지만 체감은 1년이었죠” 그렇게 완성된 ‘캄포데하먕’은 단지 가게로 머물지 않는다. 아라씨는 이 공간을 사랑방이자 마을 광장처럼 사용하고 있다. “1월부터 ‘자아 발견 프로젝트’라는 모임을 시작했어요. MBTI, 애니어그램, 심리검사, 음악 여행 등 매주 다른 주제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죠” 예상보다 반응은 뜨거웠다. 중학생부터 6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였고, 때로는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터뜨리는 참가자도 있었다. 금요일 오전마다 모이는 ‘나수리(나의 마음을 수리하는 모임)’처럼, 이 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임과 교류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글쓰기 모임도 시작됐다. “비선형 모양의 테이블도 제가 직접 디자인했어요. 각지지 않은 곡선 덕분에 누구든 편하게 앉을 수 있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어요” ‘캄포데하먕’의 수제잼은 지역 농산물과의 연계 속에서 더욱 의미를 더한다. 최근에는 산청에서 토경 딸기를 재배하는 농부에게서 딸기를 구매해 잼을 만들었다. “딸기 농가도 산불과 이상기온으로 많이 힘든 시기였어요. 그럴수록 더 가까운 곳에서 나는 농산물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라씨는 앞으로도 지역 농가와 협력하며 재료를 조달하고, ‘로컬의 가치를 담은 식료품’을 꾸준히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가게 운영에 대해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고 말했다. “제가 열심히 만든 제품이 기대만큼 반응을 얻지 못하면 슬프고,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는 너무 행복해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일이에요”   가게의 목표는 분명하다. “함양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에게 이곳이 작은 안내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차가 없어도 터미널에서 천변 따라 걸어올 수 있는 길이 너무 아름답거든요. 그래서 무인 상점도 준비하고 있어요. 누구나 조용히 들러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함양을 조금 더 알게 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또한 그는 ‘함양의 선물 상점’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잼을 드신 분들이 꼭 이렇게 말씀하세요. ‘선물 받았는데 너무 좋아서, 저도 누군가에게 선물하려고요.’ 그 말이 저에겐 가장 큰 보람이에요” 앞으로는 식재료와 식료품의 범위를 더 넓혀, 건강하고 정직한 ‘선물’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또 한 가지 바람은 지역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영업자가 되는 거예요. 플로깅, 자영업자 연대 장터, 환경을 위한 작은 실천들… 아직은 육아와 일 사이에서 여유가 없지만, 언젠가 꼭 실현하고 싶어요.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요. 누군가에게 받은 도움을 다시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캄포데하먕’ 아라씨의 이야기는 자영업자가 품을 수 있는 삶의 깊이와, 지역이 품을 수 있는 가능성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함양에서 삶을 빚는 그의 다음 계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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