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촌놈!” 여고시절 1학년 때 담임이 나에게 던진 말이다. 교회, 학교, 집만 알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생활했던 나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맘대로 꿈을 펼치지 못했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황하며 나를 돌아보았던 1년.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삶의 열정을 불태웠다. 부모님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었던 나는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 입시학원을 다녔다.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서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음 해 무사히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인생은 길다. 살아가면서 어느 한때 시련과 고난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때의 힘든 시기가 영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절망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시련과 고난은 약이 되고 자양분이 되어 나를 더 크게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고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나는 내가 꿈꾸어 왔던 아나운서, 방송에 관심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대학방송국에 문을 두드렸고 교회방송실에 자원하여 아나운서로 일을 하게 되었다. 프로덕션과 영상제작소 성우, 타 교회 홍보물 영상에 내레이션을 하고, 모 방송국 라디오 리포터 등을 조금씩 하게 되었으며 2000년대 초반 시낭송을 인연으로 무대에서 행사 사회자로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작은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신하고 있었다.연초가 되면 음악회가 많이 열리는 기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 내용을 뽑아서 담당자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나를 홍보하고 일을 따냈다. 나는 또 지나가는 길가에 붙어있는 플래카드를 소홀히 하지 않고 유심히 보았다. 음악회나 여타의 행사가 눈에 띄면 아랫부분에 쓰여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일을 따기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시나 군 단위에서 시행하는 행사를 알아내고 비서와 담당자를 직접 만나서 나를 홍보하고 일을 따기도 했다.어느 날 성산 아트홀을 지나다가 연주와 노랫소리가 들려서 들어갔다. 시민과 함께 하는 야외마당 음악회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가만히 서서 지켜보니 순서를 진행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멋있는데 진행이 매끄럽지 않았다. 순간 ‘내가 저 자리에 서야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회가 끝났을 때 나는 주최가 어디며 진행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냈고 담당자와 대화를 했다. 명함을 주며 나를 소개하고 그 음악회를 진행하고 싶다고 했더니 관장님께 말씀드려 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바로 연락이 왔고 성산에 가서 관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용기와 자신감에 놀랐습니다. 음악회를 진행해 보세요.” 너무 기뻐서 ‘아싸’ 하는 감탄사가 튀어나왔고, 마음 속에서부터 미소가 솟아나 내 얼굴을 밝고 환한 색으로 채색했다. 무료로 봉사하기로 했지만 그해에 출연료까지 받았고, 그 뒤 몇 년을 더 음악회를 진행하면서 멋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내가 속해 있는 밴드에 행사 사진이나 내용을 글로 써서 올리며 나를 알렸다. 축하와 응원의 댓글이 달렸고, 러브콜이 하나둘 생겨났으며 여러 무대에서 행사를 진행하게 되었다.무대에 서는 일을 하고 난 뒤부터 나는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했다. 나는 나를 생각하면 항상 기뻤다. 가슴 속에 희망이 밀려왔다.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스피치를 놓지 않은 내가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아, 햇빛보다 더 에너지 있는 니 목소리 들으니 기분이 좋다.” “○○아, 오늘 따라 니 생각이 나네.” “○○아, 오랜만이야, 살아있네!”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건강하세요.” 오늘도 나는 거울을 보며 “사랑한다. 채선아! 넌 잘 하고 있어!” 꾀꼬리처럼 명랑하고 밝은 그녀의 목소리를 생각해 보라. 포기하지 않고 긍정의 마음으로 열정을 불태운다면 지금 나는 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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