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1000m 이상의 함양 15개 명산을 오르는 ‘초보 등산러의 함양 산행일기’를 연재하고자 한다. 주간함양 김경민 기자가 직접 함양의 명산을 오르고 느끼면서 초보 등산러의 시각으로 산행을 기록한다. 해당 연재로 천혜의 자연 함양 명산에 흥미를 가지는 독자들이 늘어나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생생했다. 산을 오르는 내내 텍스트로만 접했던 역사가 새롭게 와닿았다.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 맞서 끝까지 항거한 안의 고을 사람들의 불같은 열정이 깃든 역사의 현장 황석산에서 다시 한번 현장의 힘을 느낀 것이다. 이처럼 서하면과 안의면의 경계에 위치한 황석산(1,192.5m)은 범상치 않은 바위산으로, 아픈 역사와 위대한 이야기를 동시에 품고 있다.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산이라 한 번 꼭 가보고 싶었는데, ‘초보 등산러의 함양 산행일기’ 두 번째 산행으로 그 기회가 찾아왔다. 완전한 가을로 접어든 10월25일 오전 그 역사의 현장을 밟고 오르고자 우리는 서하면으로 향했다. 등산에 앞서 황산리에 있는 황암사로 향했다. 황암사는 정유재란 때 순절한 사람들을 봉안하기 위해 설립된 사당으로 황석산성 전투에서 순절한 안음현감 곽준과 함양군수 조종도를 비롯한 3,500명의 순국선열들을 봉안했다. 1714년(숙종 40)에 황석산 아래에 사당을 짓고 ‘황암사’라는 사액을 받았고 해마다 음력 8월 18일에는 순국선열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황석산성 전투는 1597년 정유재란 당시 황석산성에서 왜군에 맞서 싸운 전투로 백성들과 부녀자들까지 참여한 대규모 전투다. 왜군에 맞서 결사적으로 항전했으나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전멸한 아픈 역사이기도 하다. 황암사에서의 묵념을 마친 뒤 목적지로 향했다. 기후 문제로 일정이 갑작스럽게 앞당겨져 다소 어수선하게 등산 일정을 앞두었지만, 사당이 주는 엄숙함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산행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황석산에는 다양한 등산로가 있는데 우리는 우전마을 사방댐-황석산성-정상-원점회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우전마을 회관에서 들머리인 사방댐까지 약 2km 거리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는데 무난한 흙길이 이어졌다. 그것도 잠시 점점 바위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친 돌길이 길게 펼쳐진다. 난이도가 높지 않은 너덜길이지만, 작은 실수에도 크게 다칠 수 있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오를 때는 비교적 나은 편이지만, 내려갈 때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조심히 돌을 밟으며 오르는 동안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러다 큰 물줄기와 마주했는데 어느새 피바위에 도착한 것이다. 정유재란 당시 성 안의 남자들이 모두 왜군에게 희생되자, 부녀자들은 절벽에서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고, 그때 흘린 피로 벼랑 아래의 바위가 붉게 물들었다. 피맺힌 한이 스며들어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그 흔혈은 남아 있어 이 바위를 피바위라고 한다. 실제로 접하니 사진과 달리 피바위의 붉은 자국은 훨씬 더 선명하게 보였다. 애잔한 마음과 함께 뛰어내린 절벽을 보며 소름이 돋는 순간이었다. 피바위를 지나도 가파른 오르막은 계속됐다. 로프를 잡고 바윗길을 지나는 구간도 나타면서 촬영에 애로사항이 많았는데 위험한 정도는 아니었다. 산성 터에 도착하기 전이지만 예쁜 배경이 많아 곳곳 카메라를 들이밀기도 했는데, 정상 인근에 가면 이 배경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대표님의 말에 기대감을 갖고 계속해서 올라갔다. 1시간 정도 지나 드디어 황석산성 터에 도착했다. 성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는데, 이 높은 산에 벽을 쌓았을 당시의 과정을 떠올리니 인류의 대단함이 새삼 느껴졌다. 더불어 산성에 막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도 대규모 전투의 웅장함이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세련된 모습으로 서있는 친절한 안내판에 따르면 황석산성은 삼국시대 산성으로 황석산 정상에서 좌우로 뻗은 능선을 따라 전북 장수와 진안으로 가는 길목에 축성되어 있다. 형식은 계곡을 감싸듯이 쌓은 포곡식 산성인데, 당시 상황으로 보아 신라가 백제와 대결하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2,750m, 높이는 3m 정도이고 산성의 면적은 444,609m²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산성의 둘레가 29,240척(약 8.9km)이며, 성 안에는 창고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산성 터에 도착하니 평탄한 등산로가 이어졌고, 쉬엄쉬엄 걷다 보니 정상까지 약 400m 정도 남았다. 이 지점부터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며, 이전보다 거친 돌길이 나타난다.   그렇게 돌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정상 근처에 설치된 계단이 보인다. 튼튼하고 안정적으로 자리한 이 계단은 몇 년 전만 해도 없었는데, 가파른 경사를 생각하면 그 당시 바윗길은 상당히 위험했을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맑은 날씨에 가을 배경이 성벽과 어우러져 정상의 전망이 매우 아름답다. 정상의 경치를 감상하는 순간은 즐겁지만, 황석산 정상석이 커다란 바위 위에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덕분에 스릴도 느낄 수 있었지만, 주말처럼 등산객이 많은 날에는 안전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황석산은 돌길이 거칠기 때문에 기후 조건을 잘 살피고 산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행자라면 길을 잃을 위험이 크므로 등산 리본을 잘 확인하며 오르고 내려와야 하고, 미끄러운 길에는 등산 스틱이 필수다. 이 조건들만 잘 지켜진다면, 황석산이 품고 있는 마음 아픈 역사와 웅장한 산성과 산의 조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충만한 산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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