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깊은 호흡이 감나무 가지마다 여문 감을 매달고, 그 첫 수확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어제부터 따기 시작한 감들은 오늘 처음으로 저온 창고에 안착하였습니다. 한 해의 시작과 마무리가 오묘하게 교차하는 이 시점에서, 농부의 마음은 땅과 하늘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설렘과 부담이 어깨 위에 쌓이는 계절입니다. 올해도 곶감을 깎아줄 이웃 아주머니를 구해놓고, 이틀 뒤에는 본격적으로 감 깎는 작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자동 박피기의 날을 점검하고, 저온창고와 냉동창고, 곶감 덕장과 하우스를 마지막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철저함은 농부의 시간과 노동을 배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곶감은 기다림의 산물입니다. 감나무에선 단순한 열매였던 감이, 차가운 바람과 부드러운 손끝을 거쳐 곶감이 되기까지는 오래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올해는 조금 다릅니다. 함께 곶감 작업을 해왔던 아들은 이제 떡카페 ‘함떡’을 오픈하여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의 가게에 손을 보태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올해 곶감 작업은 유독 고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 속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고자 합니다.
올해는 곶감 생산량을 줄이고 대신 기능성 상품에 집중할 예정입니다. 산양삼 곶감, 곶감 호두말이, 그리고 곶감 인절미. 이들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의 손길이 만든 고부가 가치의 결실입니다. 이미 개발을 마친 상품들이지만, 시장에서의 첫 발걸음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마치 감이 햇살을 품고 익어가듯이, 저 또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을 품고 있습니다.
올해의 감 작황은 풍년입니다. 작년에 어려웠던 원료 감의 확보가 올해는 여유롭습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면서도, 그 풍요 속에 스며든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농부의 마음은 늘 그러합니다. 고단함 속에서도 작은 기쁨을 찾으며, 내일의 풍경을 꿈꿉니다. 곶감철은 단순한 수확의 시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다림과 노력,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의 시간입니다.
이제는 곶감의 시간입니다. 손끝의 노동이 온기를 띠고, 바람 속에 말려가는 감이 시간이 지나며 황금빛 곶감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들어낸 결실이 올해도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올해는 이상기후가 겨울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에 곶감을 말릴 때 긴장하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바람의 흐름이 예전 같지 않고, 습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고품질 곶감을 생산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기후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덕장과 창고의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고, 예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농사는 변덕스러운 자연과의 싸움이지만, 준비된 농부에게는 그조차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그 불로 커피를 끓여 마신다는 어느 카피라이터의 지혜를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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