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허실편(虛實篇)22) 그런 까닭에 오행(五行)에 오승(五勝)이 없고 사시(四時)에는 상위(常位)가 없으며 해는 짧고 긴 것이 있고 달에는 죽고 사는 것이 있다.
原文(원문) 故(고)로 五行(오행)은 無常勝(무상승)하고 四時(사시)는 無常位(무상위)하며 日有短長(일유단장)하고 月有死生(월유사생)이니라.
解說(해설)여기에서는 군사에는 常勝(상승)이 없다는 이치를 설명하기 위하여 오행설(五行說)과ㅏ 기타의 예를 들고 있다.
첫째, 오행(五行)에 상승(常勝)이 없다. 오행설에 의하면 대체로 천지간의 만물의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를 이기고 토(土)는 수(水)는 화(火)에 이기고 화(火)는 금(金)에 이기고 금(金)은 목(木)에 이긴다. 이렇게 해서 오기(五氣)는 서로 신진대사(新陳代謝)를 해가면서 우주 간의 생물, 무생물은 끊임없이 변화생사의 형상을 낳는다. 여기에서 상승이 없다는 것은 바로 이 오기의 대사작용(代謝作用)을 말한 것이다.
둘째, 사시(四時)에 상위(常位)가 없다.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四時)는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일정한 위치를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상위가 없다는 것은 바로 이 점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 해는 장단(長短)이 있다. 해는 하지(夏至)를 최장(最長)으로 하고 동지(冬至)를 최단으로 해서 1년 365일, 일출에서 일몰에 이르는 시간이 하루도 같지 않다. 이 역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넷째, 달은 사생(死生)이 있다. 달이 영허(盈虛), 즉 둥근 것과 이지러지는 것이 있는 것은 이 역시 누구나 또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대음력(大陰歷)에 따르면 달의 1일을 삭(朔)이라 하고 8일은 상현(上弦), 15일은 망(望), 24일은 하현(下弦), 30일은 회(晦)라 한다. 그래서 달을 찼다가는 이지러지고 이지러졌다가는 다시 차는 것, 이 역시 천체(天體)의 숨길 수 없는 법칙이다. 이렇게 보면 대체로 우주 간의 모든 만물은 그 어느 한 가지도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다. 겉으로 보아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단지 지속(遲速)의 차가 있는데 지나지 않을 뿐이다. 군사도 이와 같다. 결코 용병상(用兵上)의 원칙이나 정석(定石)이라 할만한 것을 언제나 불변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밀고 나가려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변해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직 적으로 인해서 변화자재하고 기미(機微)를 잡아 승리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상대방에 따라서 이쪽도 변하고 그렇게 해서 승리를 거두어야만 한다. 이래야만 비로소 참된 신공(神工), 신략(神略)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병(兵)의 형상은 물의 모양과 같다. 물은 땅의 높은 곳을 피해서 아래로 내려가는데 이것은 성품이 순한 것이다. 군사는 적의 실(實)한 것을 피하여 허(虛)를 공격하니 이는 형세의 이로움이다. 그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물은 본래 하는 일이 없는데 다만 당의 높고 낮은 것에 의해서 그 흐르는 것을 제어하는 것이다. 그 허한 곳을 치는 것은 군사는 본래 아무 마음도 없으나 다만 적의 허실(虛實)로 인해서 그 승리를 얻는 것이다. 적으로 인해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라면 승리를 만드는 것은 적의 허실에 있는 것이요 병(兵)의 일정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원래 일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형(常刑)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승리를 이루는 것은 또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요 장수된 자가 능히 적의 허실로 인해서 나의 기(奇)와 정(正)을 변화시켜서 저 편에게 승리를 취하는 것이니 이것을 신묘(神妙)함을 헤아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큰 일에서 그 기미(機微)는 곧 마음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니 신(神) 아니고 무엇이랴? 대체로 적을 이기는 것은 적으로 인해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니 만일 적의 군사가 수가 적어서 오래가지 못할 터라면 기다리고 군사가 많아서 능히 속히 칠 수가 없으면 싸움을 돋운다. 군사가 노해서 능히 견고하지 못하면 군사를 욕하고 군사가 강해서 능히 살필 수가 없으면 적을 의혹시킨다. 장수가 교만해서 스스로 자신을 가지면 이를 낮추어 주고 장수가 재물을 탐해서 스스로 재물을 사사로이 하거든 이익을 주고 장수가 의심하여 결단을 하지 못하면 반간(反間)의 서안(西安)의 견고한 성을 버려두고 임치(臨淄)의 여러 군(郡)의 약한 것을 공격했으며 위원충(魏元忠)이 서경업(徐敬業)을 칠 때 경업(敬業)의 하아(下阿)의 굳센 것을 버려두고 경유(敬猷)의 회음(淮陰)의 적은 것을 취하니 이는 실(實)을 피하고 허(虛)를 친 것이다. 양소(楊素)는 녹각(鹿角)의 옛 법을 버리고 변해서 기진(騎陳)을 씀으로서 돌궐(突厥)을 당해냈고 장순(張巡)은 옛법에 의하지 않고 오직 각자가 싸워서 수양(睢陽)을 지켰으니 이는 군사에 상세(常勢)가 없는 것이다. 공명(孔明)이 여섯 번 기산(祁山)에 나갔을 때 적은 진퇴(進退)와 지속(遲速)을 도저히 엿볼 수가 없었다. 뛰어난 장수를 베고 활로 소아도 적은 능히 이를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군사를 쓰기를 신(神)과 같이 한다는 칭호가 있었다. 또 무목(武穆)이 군사를 남송(南松)에 냈을 때 적은 군사로 많은 무리를 쳐서 운용(運用)의 묘함을 한마음에 두었고 중간에 양모(揚厶)를 깨치는데 8일 동안의 기한을 정했기 때문에 악후신산(岳候神算)의 찬사(贊辭)가 있었으니 이는 적의 변화로 인한 신화스러움이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