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17세기는 위대한 근대 과학혁명을 완성한 시대다. 2천 년 전 그리스 기하학에 바탕을 둔 논리적 체계, 16세기 여러 분야에서 시작된 실험적 방법, 게다가 중세시기에 동양으로부터 수입된 기술과 실용적인 수학이 종합되어 뉴턴에 이르러 결실을 맺은 게 바로 고전 물리학이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없었더라면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4대 문명을 이룩한 그 어느 곳에서도 뉴턴이 나오지 못한 것도 바로 유럽과 같은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학혁명의 요인 중 수학 분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은 그리스 수학 전통을 되살려 논증을 중시하는 기하학 탐구에만 매달렸다. 쉽게 말해 별로 쓸모도 없어 보이는 ‘지식을 위한 지식’만 고급 지식으로 여겨진 것이다. 반면 중국, 인도, 아랍은 논증이 아닌 실용적 목적으로 수학을 활용하면서 유럽과는 다른 경로로 수학을 발전시켰다. 인도는 계산의 편리에 있어서 압도적 우위를 지닌 0을 비롯한 십진법 숫자를 만들었으며 이는 아랍을 거쳐 유럽에 전해졌다. 지금 우리가 쓰는 아라비아 숫자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유럽은 모든 면에서 불편한 로마 숫자를 쓰고 있었지만 아라비아 숫자는 편리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상인이나 기술자들에게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동양은 이뿐 아니라 역시 실용적 목적에서 양수가 아닌 음수를 고안해냈다. 수입을 양수로 나타낸다면 지출을 음수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0과 음수는 도형의 길이, 면적, 부피 등을 다루는 유럽의 기하학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숫자였다.
당시 데카르트는 유럽 전역이 휘말린 전쟁의 시기 속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한 철학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에 수학만이 확실한 학문이었기에 그는 동시에 수학자가 되었으며, 결국 그는 수학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냈다. 바로 그 업적이 동서양의 수학이 어우러지면서 만들어진 것이며 이는 뉴턴이 미적분학을 만드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으며 지금까지 수학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가 되고 있다.
그가 이룩한 업적은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천정에 앉아 있는 파리의 위치를 어떻게 나타낼까? 일단 기준점을 정하고 그 점을 지나는 수평선과 수직선을 그은 후 기준점에서 수평방향으로 길이와 수직방향의 길이, 2개의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좌표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이름도 데카르트의 좌표계(Cartesian Coordinate System)이라 부르고 있다. 이제 기하학의 가장 기본 요소인 한 ‘점’을 좌표계 상에서 숫자로 바꾼 것이다. 이는 결국 좌표계만 설정하면 공간의 모든 점들을 숫자로 바꿀 수 있으며 나아가 직선, 원, 포물선 같은 기하학적 도형들도 이들을 이루는 무한한 점들을 대표하는 방정식으로 바꿀 수 있었다. y=ax+b 는 직선, x2+y2=r2 은 원, y=ax2+bx+c 는 포물선과 같은 친근한 방정식이 데카르트의 좌표 위해서 쉽게 그려진다. 이제 기하학의 문제들이 자, 컴퍼스 등의 작도가 아닌 순수한 계산 문제로 바뀌었으며 이 변화는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결정적인 도구가 된 것이다. 실제 자연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운동의 궤적들은 직선, 원, 포물선이라는 점에서 이들을 방정식이란 형태로 수치화함으로써 뉴턴의 수학적 원리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그럼 이 작업에서 동서양의 결합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데카르트는 일단 기준점을 0 (원점)으로 정했으며 한 쪽 축은 양수, 반대편 축은 음수로 정할 수 있었다. 바로 동양에서 만든 0과 음수가 서양의 오랜 전통인 기하학과 결합되는 순간이다. 이런 점에서 동양의 수학의 뛰어난 발명품이 데카르트를 만나면서 혁명적인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다. 더불어 논리에만 치우쳤던 서양의 기하학이 좌표계위로 올라감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학 혁명, 그리고 이어지는 과학 혁명의 초석을 만든 것이다. 이 과정을 주도한 주인공은 데카르트라는 서양인이지만 양 문명 간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두 개의 구슬이 잘 꿰어져 반짝이는 보석이 만들어졌다. 두 구슬이 함께 함으로써만 보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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