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흐린 날의 오후다. 비가 곧 내릴 것만 같고 바람도 좀 분다. 불안불안한 날씨 속에도 함양 호연정을 방문하니 흐트러짐 없이 조용히 활시위를 당기며 국궁을 즐기는 이들이 보인다. 그중에는 최근 전국 대회를 휩쓸며 주목받고 있는 노기룡(53)씨도 자리하고 있다. 그가 활시위를 놓는 순간, 화살이 145m 떨어진 과녁에 ‘땅’ 소리를 내며 적중한다. 차분히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에 예스러운 아우라가 느껴진다. “국궁은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한 스포츠입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들뜨면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차분한 상태에서 활쏘기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죠” 지난해 평택 전국대회에 이어 올해 5월 하동 전국대회에도 1위를 차지하면서 2관왕에 오른 그의 국궁 경력은 놀랍게도 이제 막 3년을 넘었다. 즉 1년여만에 전국대회 1위를 차지한 셈이다. 국궁에 타고난 재능이다. “국궁으로 전국대회 1위를 처음 달성했을 때는 정말 어리벙벙했죠. 주변에서도 정말 많이들 놀라더라고요. 대회를 경험하면서 저 스스로도 국공에 소질이 있는가 보다 확실히 느끼게 되었어요” 지곡면 출신인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4년전이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어떤 운동을 할까 고민하던 와중 국궁장이 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어린시절 친구와 공설운동장 안에서 활을 쏘았던 기억이 떠올랐다는 노기룡씨. 그때부터 국궁장을 들락날락하며 활을 쏘기 시작했고 국궁선수로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현재 차(茶) 관련 인터넷 쇼핑몰 운영과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생활지원사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시간이 날 때면 날씨와 상관없이 매일 국궁장을 방문한다. “일반인들도 사법(射法) 공부와 자세 연습 등을 2년 정도 꾸준히 열심히 한다면 수준급에 오릅니다. 국궁은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활쏘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내 몸 상태가 어떤지 마음 상태가 어떤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만큼 과녁을 맞췄을 때의 희열은 남다릅니다. 스트레스가 확 풀리죠. 또 전신 근육을 쓰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건강에도 좋습니다” 함양에서 국궁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노기룡씨는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인생에 다양한 여정을 겪었다. 함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대학생활을 보낸 그는 우연한 기회에 중국 쓰촨성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했다. 이후 산둥성으로 자리를 옮겨 무역업에 종사하였고 다시 한국으로 내려와 컴퓨터 프로그램 영업일을 하다 또 중국으로 올라가는 등 여러 직업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어머니의 큰 병으로 간호를 위해 함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서울로 올라갈지 남을지 고민한 끝에 고향에 머물게 됐다. “제 팔자가 김삿갓 팔자랍니다. 그만큼 오래 머물던 지역이 별로 없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다시 서울로 올라갈까 고민도 했었습니다. 미식 축구도 했을 정도로 제가 운동을 좋아하는데 함양만큼 운동하기 좋은 환경도 없어서 머물게 되었고 국궁까지 하게 되었네요” 언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노기룡씨의 당장에 목표는 국궁 실업팀에 들어가는 것이다. 국궁인으로서의 삶이 그의 행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팔자가 팔자다 보니 제가 계속 고향에 남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머무는 동안에는 열심히 활을 쏘고 싶네요. 1년 이후에는 실업팀에 들어가 국궁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는데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젊은 청년들이 호연정으로 많이 와서 함께 국궁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언제든 호연정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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