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은 매우 강하다. ‘밥값도 못한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물론 당사자들이 느끼기에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대통령, 장관, 중앙부처의 공무원들은 밥값을 잘하고 있나?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국회의원의 일정을 보면, 지역구 챙기는 것부터 회의참석, 안건심의에 이르기까지 빡빡하다. 우리도 의정활동에 충실하고 싶지만, 한국의 정치현실이 의정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에 대해 ‘밥값을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 불신의 근본에는 자신들의 처우를 스스로 정하는 ‘셀프 연봉’, ‘셀프 처우’의 문제가 있다. 어떻게 보면 국회의원이 받는 연봉의 수준 자체보다는 그것이 정해지는 절차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 연봉이나 보좌진 규모 등은 법률과 국회 규칙 등에 따라 정해진다. 그러나 그것을 정하는 것도 국회의원들이니 결국 ‘셀프’로 자신들의 연봉과 처우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지방의원의 경우에는 그래도 ‘의정비 심의위원회’ 같은 절차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최소한 절차상으로는 국회의원보다 나은 것이다. 지방의원 의정비심의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하여 1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교육계·법조계·언론계·시민사회단체, 통·리의 장이나 지방의회의 의장 등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위촉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이렇게 구성된 위원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더 개방적이고 주민참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만 국회의원의 경우에는 이런 최소한의 절차도 없는 것이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에도 국회의원 연봉에 대한 얘기는 계속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자신의 첫 월급을 공개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첫 월급은 992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실제로 올해 국회의원 연봉은 1억 5천만원을 훌쩍 넘겼다. 매월 받는 급여에 상여금, 명절휴가비 등을 합친 금액이다. 그러나 연봉이 전부인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에게는 매월 차량유류비 명목으로 110만원, 차량유지비 명목으로 35만 8,000원이 지급된다.
여기에 대해 일부 국회의원들은 ‘과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장관같은 고위공직자들의 연봉과 비교하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홍신 전 의원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은 권위와 명예를 가지면 된다. 세비도 대폭 줄여야 한다. 공직자의 평균 연봉 정도면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국회의원 연봉이 중앙부처 과장급 연봉보다 많으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
구체적인 액수를 떠나서 김홍신 전 의원 얘기의 기본 취지는 맞는 말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권위를 갖는 것이지, 받는 연봉의 액수로 권위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국회의 권위는 국민의 지지와 신뢰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연봉의 액수로 행정부 공무원과 ‘급’을 맞추려고 하는 것은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잃어서 스스로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이런 얘기를 해도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연봉과 처우 문제를 ‘셀프 시정’할 가능성은 없다. 그래서 주권자들에게 제안한다. 국회의원들에게 ‘연봉을 주권자인 국민들이 참여해서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결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거기에 대한 답변의 태도를 보면, 그 국회의원이 특권에 안주하려고 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국회의원들의 예산부정 사용 문제가 드러난 이후에 IPSA(Independent Parliamentary Standards Authority)라는 독립기구를 만들어서 국회의원들의 연봉 등 처우수준을 결정하도록 했다. 대한민국 국회도 이런 정도의 개혁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이렇게 하려면 독립기구의 구성부터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지고, 독립기구가 국민들의 여론도 잘 수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국민들이 토론해서 국회의원들의 연봉 등 처우수준을 결정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의 연봉 등도 주권자가 결정한다’는 원칙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것이 국회의원에게도 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