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라는 책을 읽었다. 처음엔 무슨 내용일지도 모르고 제목이 무슨 뜻일까 궁금해서 집어 들었지만 금세 빠져들어 45분 남짓한 국어시간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흔히 말하는 ‘과몰입’ 상태가 돼 주변인들에게 하와이 이주 역사에 대해 찾아 본 이야기들을 마구 해 주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해 이렇게 기사까지 쓰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이민지는 어디일까? 보통 일본이나 미국 본토라 생각하겠지만 최초의 공식 이민지는 의외로 하와이다. 그 당시 하와이는 미국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으며 사탕수수, 파인애플 농장 등과 같은 플랜테이션 산업을 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농장지에서 처음엔 하와이 원주민들을 고용해 일을 시켰고, 점점 동남아와 동아시아 등지에서 일꾼을 구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종이 1902년 노동 이민을 허락함과 동시에 1902년 12월 22일 갤릭(Gaelic)호를 타고 최종적으로 86명이 하와이에 도착하였다. 포와(布哇)(하와이의 한자 이름이다.)엔 추운 겨울이 없이 언제나 화창하며 1년 내내 일할 수 있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지상낙원이라 했던 모집 광고와는 달리, 그곳에서의 생활은 ‘사슬 없는 노예’ 나 다름없었다. 하와이에 거주하는 백인 ‘하올레’ 들의 채찍질을 받아가며,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사탕수수밭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했으며 일한 후 받는 돈은 50~80센트였다. 또한 일본인 노동자들과의 잦은 충돌에,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 중 대부분이 남성 혼자 이민을 온 것이었기에 혼기가 찬 이주민들은 조선인 신부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조선과 먼 거리 특성상 그들은 서로 사진 한 장만 교환한 뒤 결혼했는데, 그러다 보니 신랑들은 잘 사는 척 사진을 속여 찍기도 하고 훨씬 젊은 나이 때 찍은 사진을 보내 사기를 치기도 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책의 내용 또한 주인공 소녀가 신랑과 서로 얼굴 사진 한 장만 보고 포와로 시집을 오는 내용이다. 신부들 또한 중매인의 말에 자유롭고, 공부도 할 수 있을 그야말로 하와이안 드림을 꿈꾸며 배를 탔지만, 말과는 달랐던 현실에 고된 빨래일과 주방일 등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힘든 삶 속에서도 그들은 번 돈의 일부를 조선의 독립 기금으로서 지속적으로 기부했다. 보통 ‘인하대’라는 줄임말로 많이 알려진 ‘인천 하와이 대학교’ 또한 그 기부금으로 지어진 대학교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땐 그들의 자손인 이민 2세대들도 다수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난 ‘하와이’를 떠올리면 항상 푸른 바다와 야자수가 있는 휴양지의 이미지가 먼저 연상됐는데 우리나라와 하와이 사이에 이런 관계가 있는 줄은 몰랐다. 책을 읽고 자료 조사를 하면서 하와이 이민 동포들이 타국에서의 힘든 생활 속에서도 대한독립에 관심을 가지며 도운 것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또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작가의 말을 읽으며, 성찰한 점이 많았다. 작가는 그 당시 우리 이민 동포들의 삶과 현재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국제결혼 여성들의 삶이 같은 상황이 아니냐며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거나 하대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했다. 나는 책을 읽고선 이민동포들에게는 존경심을 느끼고 안타까워했으면서도 평소 외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좋은 인식이 없었던 것 같아 부끄러웠다. 이 글을 읽게 되는 독자들도 이 글에 적힌 하와이 이주 역사 내용 외에도 한국인의 이주 역사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유튜브 등을 통해 찾아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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