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너무 흔하다. 흔하면 사람들은 그 가치를 모른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여자육상 3관왕 임춘애 선수, 가난으로 쌀밥 대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힘겹게 운동했다고 인터뷰하던‘라면소녀’를 우리는 기억한다. 하지만 요즘 쌀밥은 라면보다 훨씬 저렴하다. 공기밥 한 그룻을 짓는데 드는 가격이 약 260원, 마트에서 팔리는 라면 한 봉지 가격이 얼추 1,000원이 넘는다. 참으로 상전벽해를 실감한다. 실제로 역대 최대 쌀 과잉 공급으로 대란을 겪었던 2022년 가을, 농민들은 밥 한공기 300원을 보장하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공공비축미 매입가는 7만120원(40kg 벼, 1등급)이었지만, 실제 농협 수매로 받는 나락값은 6만원 내외에 불과했다. 올해 들어 산지쌀값은 80kg에 19만6,656원으로 정부가 약속한 20만원 선조차 무너졌다. 거기에다 각종 농자재값과 농촌 고령화에 따른 인건비 증가 등 치솟은 생산비로 벼 재배 농민들의 순소득은 수년째 바닥에 머물러 있다. 쌀값 하락에 농가의 시름만 깊어갈 뿐, 정부 차원의 뾰족한 대안은 요원하다. 2022년 한국인 1인당 쌀 소비량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며 통계 작성 이래 최소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삼시 세끼’ 쌀밥이란 말도 이젠 옛말이 되어버렸다. 갈수록 쌀 소비량은 줄어드는데 농업기술 향상으로 연이은 풍년을 이뤄내면서 산지 창고에는 쌀 재고가 쌓여가고, 쌀 농가와 농협미곡종합처리장(RPC)은 수확한 쌀 처리가 걱정되는 지경이다. 되풀이되는 쌀 과잉과 가격 폭락에 대해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쌀값이 하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쌀 문제 해결에 시장논리만 앞세울 수 없는 여러 이유가 있다. 주곡인 쌀은 농민의 대표 소득원이며 대한민국 식량안보의 보루이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식량이 무기가 되는 상황을 지켜봤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팜유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곡물 물가가 휘청하는 등 총성 없는 식량전쟁으로 번지며 전 세계가 극심한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 국회는 지난해 대통령이 거부했던 양곡관리법 재추진과 관련해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쌀값 보장을 위해서는 강력한 시장격리만이 해답이라는 입장과 천문학적인 예산 투입에도 결국은 쌀 공급과잉 현상만 심화시킬 뿐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농민의 안정’이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정쟁만 남아버린 건 아닌가 우려스럽다. 필자의 고향이자 지역구인 함양에는 다랑논, 구들장논이란 것이 있다. 비탈진 땅에 계단식논을 일구고 온돌처럼 구들장을 놓아 그 아래로 관개·배수를 해서 붙여진 이름들이다. 쌀이 몹시도 귀했던 시절, 평지가 아닌 산등성이에서라도 쌀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눈물겹도록 지혜로운 농업인들의 삶을 대변해주는 소중한 유산(遺産)이다.   농업은 산업이다. 산업은 경제 원리에 기반하지만, 농민의 안정까지 시장에 맡길 순 없다. 수요에 맞게 벼 재배면적을 줄이되, 농가의 소득 안정을 위해 정부가 쌀값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자고 일어나면 떨어지는 쌀값의 시장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 다랑논, 구들장논을 일구며 쌀 부족 문제를 극복했던 조상의 지혜를 거울삼아 쌀이 넘쳐나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 추락하는 쌀값에 날개를 달자. 우리 모두 “Have a Ric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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