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은 긴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 곧 대학생이 된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제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된다는 점이다. 삶의 여정 중 모든 시기가 다 중요하겠지만 뭐니 해도 수능 이후가 가장 중요하다. 역동적인 변혁의 시기여서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언론사가 수능 이후 버킷리스트를 조사했더니, 첫 번째가 여행이었다. 다음으로 수능공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감성을 쌓는 책읽기가 손꼽혔다. 청춘들의 ‘버킷리스트’가 ‘희망고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여행의 위대함’을 들여다보자. 세상 모든 것이 여행의 대상이자, 삶의 지평을 넓히는 배움의 장이다. 사람 성품은 유전적, 환경적 요인의 결정체다. 감성과 이성이 합리적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건강하고 바람직한 인성이 형성된다. ‘여행은 글자 없는 책’이라 했다. 책을 통해 지식과 이성을 단련한다면, 여행은 오감을 통한 감성을 키우는 유용한 도구이다. 인성적 측면에서 뿐 아니라 성공한 삶을 위해서도 여행의 중요성은 늘 강조되고 있다. 여행하면 사마천이 떠오른다. 사마천은 젊은 시절의 여행이 없었다면 그토록 생생한 현장 정신이 살아있는 불멸의 역사서 ‘사기’를 완성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아버지 사마담의 권유에 따라 스무 살 때 천하를 주유했다. 수능을 마친 고3 수험생과 비슷한 시기였다. 사마천은 3년 동안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채록했다가 일생을 두고 52만 6500자로 이루어진 역사서를 완성했다. 여행을 통해 받았던 영감과 통찰력, 현장탐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500년 전 왕가나 정치인 학자 뿐 아니라 30명의 거부, 심지어 조폭두목 격인 협객, 미인 이야기까지 엮어낸 그의 능력은 어디서 왔을까.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의 증언과 유적 답사, 여기에 사료 분석과 검증을 거친 탄탄한 스토리 전개를 통해 ‘사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마천의 여행을 두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행’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조선 선비들의 여행도 눈여겨볼만 하다. 조선 중기 명산 유람이 오늘날 등산열풍 못지않게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리산 유람이 대세였던지 ‘두류산 유람록’이 수십 편에 달할 정도로 많은 선비들이 기록으로 남겼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다양한 교훈을 유람록에서 엿볼 수 있다. 일두 정여창, 탁영 김일손 같은 함양의 선비들도 지리산 여행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와 사상을 현실정치에 반영해 민심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점필재 김종직은 지리산을 여행하면서 백성들이 과도한 ‘차(茶)공물’에 시달리는 현실을 확인하고 함양에 차밭을 만들어 해결하는 통찰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여행은 그냥 떠나도 좋다. 가슴을 열고 세상과 마주하다 보면 세상의 다른 모습이 느껴지고 와 닿는다. 또 다른 나를 볼 수도 있다. 뜻을 넓히고 견문을 더해 배움을 얻는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다. 여행을 좀 더 깊이 접근한다면, 삶의 가치도 달라질 수 있다. 산 바다 같은 자연경관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 그 곳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현장을 연구하고 탐구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고뇌하고 연구해도 안 되면, 찾아가 묻고 듣고 가르침을 받는 자세가 더해지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 많이 보고 듣고 경험했으니 안목이 넓어지고 사회에 대한 이해의 심도가 깊어지고 성숙해진다. 그래서 그 사람만의 품격이 형성된다. 니체는 “산보하며 사유하지 않은 사상은 의심하라.”고 했다. 수능을 마친 청춘들이여, 여행을 떠나라. 그리고 기꺼이 누리고 만끽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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