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고향은 출신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같은 하늘 아래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시간의 무게로 잠깐 낯설다가도 곧바로 안정감을 느끼는 마음의 공간이다. 일자리를 찾아, 원대한 꿈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각지를 떠돌며 밤낮없이 일에 매달릴 때에도 떠올리면 따뜻하고 언제나 그리운 곳이 고향일 것이다. 이처럼 여전히 고향 함양을 그리며 살아가는 향우들이 전국 곳곳에 있다. 주간함양은 매달 한 편씩 연재되는 ‘함양 향우를 찾아서’ 특집을 통해 각지에 있는 고향 향우들을 만나 끈끈한 정을 느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안되면 될 때까지!”, 서울 강동구와 경기 양평군 두 곳에서 LG전자 베스트샵을 운영하고 있는 향우 서흥석 대표의 신조다. 어릴 적 고향 함양을 떠나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그는 전자제품 정비 서비스 일을 거쳐 수도권에 전자매장 두 곳을 운영하고 있다. 함양을 떠나 자수성가의 길을 걸어온 향우 서 대표를 만나기 위해 LG전자 베스트샵 양평점을 방문했다.
외로운 서울살이와 승승장구의 길
서 대표는 유림면 웅평리에서 태어나 대웅초등학교와 수동중학교를 마치고 이른 나이에 부산으로 떠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취업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그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기술정비 일을 하게 된다.
“서울에 상경을 해서 서울역에 딱 내렸는데 차도 많고 집도 이렇게 좋은 집이 많은데 막상 저는 몸 둘 곳이 없어 서글픈 생각이 많이 들었죠. 힘든 서울살이를 하면서도 6개월 과정 학원을 정말 열심히 다녀서 삼성전자 서비스센터까지 들어갔죠”
어렵게 들어간 만큼 서 대표는 생소했던 국내 가전제품을 다루는 일이었지만 직접 제품을 분해해 스스로 터득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은 기술을 배운다고 하면 가르쳐 주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예전에는 가르쳐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로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직접 분해해가면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 빠른 길이었죠”
그렇게 오랜 시간 직장인으로서 서비스센터 일에 매진해오다 조금 더 큰 수익을 위해 독립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당시 독립채산제를 통해 에어컨, TV 등 개별적인 수리 주문이 쏟아졌다던 그는 큰돈을 벌면서 승승장구의 길을 걷는다. “직장생활을 쭉 이어가면서 돈을 어떻게 하면 많이 벌 수 있을까 고민을 해봤죠. 그러다 남이 못하는 서비스를 해야 되겠다 생각했는데 당시에는 에어컨이었어요. 힘은 들지만 수익이 큰 모델이었죠. 그때는 독립채산제라는 게 있어서 그것을 활용해 스스로 직접 오더를 받고 수리하면서 살아왔죠. 그렇게 쭉 해오다 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소개와 소개를 거치면서 일을 하다보니 돈을 정말 많이 벌었죠. 90년대였는데 여름에 한 달에 많이 벌었을 때는 2000만원 가까이를 벌었죠”
인생의 전환점, 매장오픈
10년 가까이 수리일에 매진해 오면서 큰돈을 벌게 된 서 대표는 이제 직접 매장을 운영하기에 나선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 오래 몸을 담았던 만큼 삼성전자 매장을 오픈하고자 관련 영업소를 찾아갔으나 어렵다는 말을 전해 들은 그는 럭키금성(현 LG)을 찾아간다.
“94년도에 이런 매장을 오픈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삼성에서 오래 일을 한 만큼 삼성 매장을 오픈하려 했는데 자금 문제로 럭키금성으로 선회를 했어요. 삼성 근무 경력과 자격증 등을 내세우며 어필을 했는데 당시 담당 과장이라는 분이 내일부터 매장을 알아보고 다니라는 거예요.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았죠”
매장 운영이라는 새로운 챕터를 시작한 서 대표, 강남 개포동에 자리잡은 매장을 순조롭게 운영해 나갔다. 97년 IMF 외환위기도 있었지만 당시 출시된 PCS 휴대폰 예약 건수를 대량으로 받으면서 위기를 피했다.
“97년도에 IMF 외환 위기가 터졌는데 당시 금성은 LG전자로 바뀌는 과도기였어요. ‘IMF를 이기자’는 구호들이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저는 운이 좋게도 해당사항이 없었어요. 그때 이제 PCS라는 휴대폰이 출시했었는데 인기가 상당했습니다. 제가 그때 예약을 200건 정도 받았는데 대리점에서 이 정도 예약 건은 정말 많은 거였죠. 그게 영업소가 따로 있었지만 공급 문제로 제품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당시 제가 수리나 업그레이드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고장 난 제품을 사서 정상으로 만든 후 고객들에게 다시 제공한 바가 있어요”
이후 수익이 계속해서 올라가는 구조 속에도 사업을 접고 7개월 정도를 쉬게 된 서 대표. 건물을 구입하기 위해 매장 사업을 접었지만 IMF 외환 위기 여파로 인한 규제로 건물을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무산된다. 마침 LG 본사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매장 운영을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까지 받으면서 다시 매장 운영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건물을 구입하기 위해 4년 정도 운영했던 매장일을 접었어요. 7개월 정도를 쉬었는데 건물을 구입할 국내 환경도 좋지 않았고 마침 LG 본사에서도 제안이 들어온 거죠. 그런 상황이 되면서 ‘아 내 길이 이건가’ 싶어 서초 양재동에 매장을 마련하게 됐죠”
큰 병 딛고 재출발
양재동에서의 재출발로 지금은 서울 강동구와 경기 양평군 두 지역에서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서 대표. 재출발 이후 계속해서 순탄하게 이어질 것만 같았던 앞길이었지만 그를 가로막는 일이 발생한다. 바로 폐암 판정을 받은 것이다.
“2009년도쯤 워크숍 때문에 3박4일간 중국에 있었는데 저녁 술자리를 가지고 있던 도중 문자가 하나 날아오는 거예요. 암이 의심돼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문자였죠. 전에 건강검진을 받은 바 있는데 이런 결과가 나온 거죠. 그 문자를 받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해외까지 왔는데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수술을 위해 다시 돌아왔죠” 다행히도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건강을 되찾은 서 대표. 건강 문제로 1년을 쉬고 돌아온 만큼 공백의 시간 동안 매장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안되면 될 때까지!’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일어선 그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서 대표는 대리점이 아닌 자신만의 매장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만의 매장을 운영하는 게 늘 꿈이었어요. 그것을 한번 이루어보고 싶은데 모르겠습니다. 이루어질지 안 이루어질지. 두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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