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이라 함은, 과거 세력가에 손님으로 머물면서 식사를 해결하고 주인을 돕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다. 최근에는 남의 집에 얹혀 밥을 얻어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비하의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처음 이 말이 나온 춘추전국시대에는 힘 있는 사람 옆에 머물며 실력자를 돕는 인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오늘은 전설로 남은 한 식객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춘추전국시대에 맹상군이라 하는 군자가 있었다. 그는 제나라 사람으로 부유하고 높은 관직을 지녔으며, 설이라는 땅을 봉지로 받아 운영하며 3000명의 식객을 거느린 것으로 유명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식객 애호가였는데, 때문에 천하의 온갖 사람들이 맹상군에게 몰려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때 풍훤이라는 사람이 맹상군에게 식객으로 받아줄 것을 청했는데, 맹상군이 아무리 식객을 좋아한다지만, 아무 능력도 없는 백수들을 받아줄 정도로 순진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각기 특출 난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맹상군 식객 명단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풍훤 또한 이런 재주꾼인지를 확인해보기 위해, 맹상군은 어떤 재주가 있느냐고 풍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과감하게도 풍훤은 ‘난 재주 그런 거 없고, 그냥 당신이 손님 맞이하기를 좋아한다길래 내 한 몸 의탁하려고 왔소’라고 대꾸한다. 오늘날 회사 면접에서 면접관에게 저런 대답을 했다간 바로 쫓겨날 테지만, 맹상군은 풍훤의 진가를 미리 엿본 것인지 별다른 재주가 없다는 그를 두말없이 받아들였다. 식객이 된 풍훤은 자신이 맹상군에게 보여준 건 없지만, 어쨌든 대접이 소홀하다고 느꼈던 모양이었다. 하루는 갖고 있던 장검을 두드리며 “밥상에 생선 한 마리도 없으니 장검아 이제는 그만 돌아가자”라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니까 식사가 부실하다고 태클을 건 것. 이를 본 맹상군은 대범하게도 생선을 대접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풍훤은 아직도 불만이 많았는지 며칠이 지난 후 또 풍훤이 “외출할 때 타고 다닐 수레도 없으니 장검아 집으로 돌아가자”라며 또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착한 맹상군은 풍훤이 외출할 때 탈 수레를 내주었다. 그러고도 풍훤은 “장검아 돌아가자! 여기 있어 봤자 내 집이 없구나!”라며 브레이크가 없는 을질을 시전했고, 맹상군도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 인간을 대체 어떻게 써먹을까 고민하던 맹상군은 풍훤에게 설 땅에서 그동안 맹상군에게 돈을 빌린 사람들의 빚진 돈을 모두 받아오라는 일을 시킨다. 단순한 작업인 만큼 이 정도는 잘 해오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으니, 설 땅에 도착한 풍훤은 빚진 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당장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아 술과 고기를 사서 채무자들에게 먹였다. 그러면서 기한을 연장해주면 돈을 갚을 수 있다는 사람에게는 기한을 연장해 주었고, 너무나 가난해 도저히 빚 갚을 형편이 못 되는 사람에게는 차용증서를 가져오라고 해 불태워 버렸다. 당연히 사정을 들은 맹상군은 화를 내며 따져 물었다. 이때 풍훤은 “이자도 못 갚을 사람들에게 빚 독촉을 해봤자 원망하며 달아날 뿐이고, 맹상군은 돈만 좋아하고 백성은 아끼지 않는다는 소문만 날 것이니 어차피 받지도 못할 차용증서를 태워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공의 덕을 알린 것입니다”라는 비범한 답을 했는데, 이는 그가 앞으로 펼칠 엄청난 언론플레이의 서막을 알리는 대사였다. 이후 애석하게도 맹상군은 운명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급하강을 하게 된다. 제나라 왕이 이간질에 속아 맹상군을 파직시킨 것. 한순간에 몰락한 맹상군, 그의 식객들은 다 떠나버리고, 그의 옆에는 혀만 잘 굴리는 듯한 풍훤 한 사람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이 풍훤이 바로 장화신은 고양이일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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