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잘 계십니까? 요즘은 봄이 살짝 고개만 내밀고, 충분히 느끼지 못한 채 여름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때야 말로 건강을 잘 챙기셔야 합니다. 금년 1월에 저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벌써 100일이 지나, 일본에서 스님을 모시고 100일을 기리는 집안 행사를 지냈습니다. 저는 참석을 못했기 때문에 잘 지냈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우리 집안이 다른 집안보다도 특히 조상을 잘 모셔드리는 지역(나가사키 현 지역)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를 보내드리기 위한 행사도 참 많았지만, 일단 100일 행사를 마쳤기에 멀리 있는 저는 집안 행사를 챙겨주신 오빠에게 고마운 마음입니다. 오늘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얘기 해주셨던 엄마의 인생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 엄마는 태어나셔서 어릴 때에 친엄마의 언니 집에 양녀로 입양되셨습니다. 그 시대에는 그런 일이 많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집안에 아기를 낳지 못하는 형제자매가 있으면 그 집안 안에서 자녀를 보내주는 형태였다고 합니다. 친엄마의 언니가 아기를 가지지 못한 채 몇 년이 지나자, 결국 친엄마께서는 셋 째이셨던 저희 엄마를 양녀로 보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생각하실 수 있는 나이였기에 자신을 길러 주게 될 엄마는 친엄마가 아닌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게다가 친엄마 여동생 집에서도 언니 집에 양녀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그 언니집에는 저의 엄마와 여동생(친엄마 여동생 집에서 보내준 양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양녀로서, 또 언니로서 생활하시다 보니 항상 힘을 주며 사셨던 것 같습니다. 원래 성격은 농담도 즐기는 편이셨을 텐데, 어느새 엄마께서는 모든 일을 ‘딱딱하게, 형식적으로, 사람의 눈치를 보고, 상식에 맞게’ 라는 방식으로 살아오셨던 것 같습니다. 저희 엄마는 엄마와 대화도 하고, 가끔 애교도 부리고 싶고, 힘들 때 위로도 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새엄마께서는 아이를 낳아 길러본 적이 없으셔서 그런 부분들과 같은 교감과 스킨십을 못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엄마는 항상 외로움과 친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혼자 안고 사셨습니다. 제가 어릴 적 눈물을 참으시며 이 이야기를 하셨던 게 생각납니다. 누구든 가족에 대한 마음은 간절하지만 우리 엄마는 특히 자기 가정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넘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형제들에게 부담되는 만큼의 간절한 사랑이셨습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고 집착하시는지 이해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가 받지 못했던 사랑을 우리에게는 부족함 없이 주고 싶으셨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제가 조금 더 어른이었다면 엄마의 그 외로운 마음을 함께 공감해줄 수 있었는데, 그때는 그 여유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듣기만 했습니다. 저의 엄마께서는 1930년에 태어나서 9살인 1939년부터 제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활도 많이 힘들면서 세상도 아주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고생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이, 저의 엄마뿐만이 아니었다는 말이죠. 그래서 더욱 그 어려운 심정을 아무한테도 상담할 수 없었습니다. 1945년까지의 전쟁 때문에, 꽃피는 소녀시절을 전쟁 후 아주 어렵게 보내셨습니다. 중학교에서 3,4명 만 고등학교 진학이 가능했던 시절, 저의 엄마는 성적 우수로 진학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집안은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엄마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3학년이 될 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학기를 남기고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두게 되셨습니다. 열심히 공부해 오셨던 엄마에게 “여자는 공부를 잘하면 뭐하냐, 공부보다도 집안의 일을 잘 하면 된다” 하시는 아버지가 얼마나 미웠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엄마는 그 어려운 시대에 키워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생각하시며, 학교를 그만 둔 다음날부터 바로 물지게 통 양쪽에 돌을 담고 옮기는 고된 노동을 하셨습니다. 그때 너무 무리를 하셔서 나이가 70대에 들어서시면서 몸이 옆으로 점점 휘게 되셨습니다. 끝까지 그 몸으로 고생하셨는데, 그 몸을 볼 때마다 “젊으셨을 때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고생하시지 않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돌아가신 직후보다 더 엄마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직후에는 실감나지 않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요즘 조금씩 올라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울 속 나의 모습이 엄마와 많이 닮았다는 것. 이건 복이겠죠? 늘 그리운 엄마를 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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