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연말 이후 설 명절까지 국회의원들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은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도대체 국회의원들은 무슨 돈으로 이렇게 대량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을까? 그 자금의 원천중 상당 부분은 국민세금이다. 국회사무처가 예산에서 국회의원들의 문자발송비까지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민세금까지 들여서 보내는 문자메시지의 내용이 ‘국회의원다운’ 것일까? 국회의원으로서의 의정활동을 알리는 내용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내용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지역구에 예산을 얼마 따 왔다고 자화자찬하거나 단순한 명절 인사만 하는 문자도 있다. 이렇게 ‘지역구 관리’ 차원으로 보내는 문자발송비용까지 국민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라는 의문이 든다.
연말 연초와 명절부근에는 국회의원들이 지역구에서 많은 행사에 참석한다. 지역구 민원도 챙긴다. 경조사에 얼굴을 비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무척 바쁜 일정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드는 의문은 ‘이런 일을 하라고 우리가 국회의원을 뽑았나?’ 라는 것이다.
아무리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도, 국회의원은 국가의 일을 보는 것이 자기 역할이다. 600조원을 넘어선 국가의 예산·결산을 심의하고 입법활동을 해야 한다. 행정부의 정책이나 법집행을 감시하면서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국정감사, 국정조사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들 스스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지역구 관리에 쓰고 있다’고 고백한다. 어떤 경우에는 지방의원이 챙겨야 할 지역 민원까지 국회의원이 챙긴다.
만약 장관이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군수·시장·구청장이 해야 할 민원을 받고 있다면, 그 국가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는 국가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일을 챙겨야 할 국회의원이 지역구 경조사까지 챙기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유권자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지역에서 국회의원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열심히 한다’라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반대로 평가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국가의 일을 해야 할 국회의원이 ‘지역구 관리’하러 열심히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은 매우 ‘이기적’인 행태로 볼 수도 있다. 다음번 선거에서 자신이 당선되기 위해, 정작 주권자가 자신에게 맡긴 역할은 방기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안들 가운데 국회의원이 관심을 갖고 개입해야 하는 사안도 있다. 국가정책과 연관된 사안이거나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바깥에 있는 사안의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그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국회의원이 지역구의 시시콜콜한 사안까지 챙기는 것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출직들의 역할도 뒤죽박죽이 된다. 지방의원이 해야 할 일을 국회의원이 해 버린다면, 역할의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역할의 혼란은 도미노 현상처럼 퍼져나갈 수 있다. 국회의원이 제 자리를 못 찾으면 지방의원도 제 자리를 못 찾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방의원도 지방자치단체 전체 일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좁은 자기 선거구만 염두에 두고 의정활동을 하게 된다. 그 결과 국회의원부터 지방의원까지, 공동체 전체의 문제를 고민하기보다는 다음번 선거를 위해 자기를 선출해주는 선거구민만 챙기는 현상이 퍼지게 된다. 국가 전체나 지방자치단체 전체의 일은 나 몰라라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의 근본원인이 이런 ‘잘게 쪼개진 지역구 정치’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결과 거시적인 국가정책들은 정치의 영역에서 잘 논의되지 않는다. 지역에서도 지역 전체의 발전방향이나 비전은 토론되지 않는다. 그 결과 거대한 ‘정치의 공백’이 생겨 버렸다.
그런 점에서도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국회의원은 국가의 일을 하고 지방의원은 지역의 일을 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선거구를 잘게 쪼개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1개 선거구에서 2명이나 3명을 뽑는 것은 거대양당의 기득권구조를 강화시킬 수 있다. 그것보다는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권역을 나눠서 비례대표제를 하고, 유권자들이 정당만 고르는 것이 아니라 후보까지 고를 수 있는 ‘개방형 명부’ 제도를 채택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