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변에서 인공적인 물건들은 대체로 반듯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물들과 구분이 된다. 실제로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그 어느 것도 기존의 기하학적 도형을 근거로 형태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프랙털 기하학은 창시자인 망델브로는 기념비적인 저서 『자연의 프랙털 기하학』에서 “구름은 동그랗지 않고, 산은 원뿔모양이 아니며, 해안선은 원형이 아니고, 나무껍질은 부드럽지 않고, 번개는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했다. 프랙털 기하학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수많은 자연물들을 표현하는데 필요하다.그럼 왜 자연에는 프랙털로 묘사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그렇게도 많을까? 모든 사례에 대해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이유는 ‘자연의 경제성’이라고 본다. 이는 매우 생소한 낱말일 것이다.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은 이 원리를 따르고 있다. 먼저 ‘페르마의 원리’라는 것이 있다. 빛은 최단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경제적인 경로를 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빛은 직진한다.빛 말고도 일반적으로 움직이는 물체 역시 경제적인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뉴턴은 힘과 가속도의 법칙으로 물체의 운동을 설명했지만 100여년 후의 수리물리학자들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운동을 기술했으며 뉴턴과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이들에 의하면 모든 물체는 ‘작용(action)’이라는 물리량이 최소가 되도록 하는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자연은 주어진 조건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성질을 지닌다.물체가 갖는 형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물체는 인간의 뇌라고 한다. 진화 과정에서 얻은 복잡한 대뇌피질이 뇌 전체의 표면을 덮고 있으며 사고, 언어, 의식, 판단 등 많은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 짓게 한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기능을 담으려면 더 많은 신경세포를 대뇌피질에 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부피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연은 부피를 증가시키는 대신 표면을 주름지게 만들어 주어진 부피 안에 가능한 넓은 표면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택했다. 결국 우리의 뇌는 프랙털 구조를 갖는다. 유한한 면적을 둘러싼 해안선의 길이가 무한이 길어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이다. 바로 자연의 경제성이다. 실제 인간의 대뇌피질의 주름을 펼치면 커다란 식탁보 정도 된다고 한다. 아마도 생명의 진화 과정 역시 경제성의 원리를 철저히 실천하면서 지금의 다양성에 이른 것이 아닐까 한다. 나무의 가지가 생겨나고 뻗는 형태도 유사하다. 이는 가지에 달린 모든 잎들이 태양의 빛을 골고루 비치는데 효과적이며 뿌리로부터 얻은 양분을 모든 가지로 전달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같은 원리는 많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의 생김새와 더불어 동물의 혈관, 강줄기의 모양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특히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토는 고생대 지형으로 어느 나라보다도 복잡한 프랙털 형태를 갖고 있다. 카오스와 질서가 잘 어우러진 자연환경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그 지형을 닮아 자유분방한 풍류를 즐겼고 흥이 넘쳐났다고 알려져 있다. 서구의 과학과 문명이 지배하게 되었고 질서 지키기가 상식의 된 이 시대에 질서의식이 부족한 민족으로 취급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카오스와 프랙털이 과학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다 틀에 박힌 질서체계로부터의 이탈이 조명을 받고 가치를 인정받는 이 시대에 K-pop과 같은 한류가 주름잡고 있는 것도 우리의 지형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단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이 도시의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와 고층건물 속에 갇혀 아름다운 우리의 프랙털 구조로 펼쳐진 공간을 긴 시간 대면할 틈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정형화된 도시공간으로부터 분산되어 함양 지역과 같은 프랙털 지형 속에 깃들어 살 수 있게 된다면 우리 민족의 저력은 더욱 더 빛나게 될 것이다. 2023년 새해를 맞아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안에 있는 흥이 모두에게 돋우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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