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향할지 모를 행로. 우연에 의지해 움직이는 대리운전의 삶이 그렇다. 분명한 노선과 시간표로 운행되는 버스와는 달리 누가 부를지 또 어디로 향할지 예측할 수 없다. 아내와 2인 1조로 대리운전을 하는 김환도씨는 함양을 기점으로 가까운 면단위부터 멀게는 수도권까지 움직인다. 10년 이상 택시를 운행하던 중 지역에 대리운전 문화가 없다는 주변인들의 불만과 요청은 김환도씨를 대리운전으로 이끌었다. 대리운전 7년 차에 접어든 그는 택시 운행을 시작으로 지금도 이름 모를 누군가의 부름을 기다리고 예고 없던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타인의 여정을 책임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김환도씨. 직업 특성상 음주 고객이 잦은 만큼 난감하거나 얼굴 붉히는 불상사도 있지만 쌀 한 말에 벌레보다 쌀이 많은 것처럼 기분 좋은 격려가 더 많다고 그는 말한다. “운전을 하면서 좋으신 분들을 많이 만난 것 같습니다. 커피 한 잔 드시라고 돈을 추가로 주시거나 고생한다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많은 기운을 얻죠” 좋은 사람과의 동행은 언제나 따뜻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김환도씨의 과거 아픔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이른 나이에 뜻하지 않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의 길을 홀로 달려야만 했던 그의 청춘은 쉽지 않았다. “21살 때 오토바이를 몰고 아버지를 모시러 갔던 것 같은데 그렇게 휴천으로 향하던 중 큰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사고 현장의 기억을 잃을 만큼 후유증이 컸는데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했죠” 사고 당시 기억이 방전될 정도의 큰 사고를 당한 그는 다리가 부러지고 비장이 터지고 턱이 깨지면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13번의 수술과 함께 병원 신세를 졌다. 그 과정에서 다리를 절단할 뻔한 위기에도 처하는 등 심리적으로 불안한 나날을 견뎌야 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낳았다. 병원을 벗어나자마자 보험을 제외한 1억원이 넘는 수술비와 병원비를 갚아야 하는 낯선 행로에 놓인 것이다. 그는 자기 연민에 허우적댈 여유도 없이 갈림길 없는 하나의 고난의 길로 액셀을 과감히 밟아야만 했다. 빈병·고철 주워 팔기부터 시작해 마트일, 다방차 운전 등을 전전한 김환도씨는 결국 수술비와 병원비를 갚아낸다. “마트일 당시 월급에 5만원을 제외한 남은 돈을 수술비와 병원비를 갚는데 쓰면서 힘들게 갚아 나갔습니다. 그 정도의 큰돈을 다 갚고 나니 기운이 막 생기면서 사람이 독한 마음을 먹으면 못할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뜻밖의 행로를 담담히 달려나간 김환도씨를 보면서 이제는 진부하다 느껴졌던 ‘인간은 파괴될지 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헤밍웨이의 문장이 다시 생명력을 얻은 듯 다가온다. 병원을 나오고 긴 세월이 흘렀지만 상흔은 아직 남아있나 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따라올 후유증에 대한 두려움이다. “50대 중반을 넘어가면 교통사고의 후유증이 다시 나타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때는 좀 수월하게 살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모으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달리는 여정을 멈추고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 조용히 농사를 짓고 싶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역경을 딛고 일어난 김환도씨는 꿈에 그리는 그날이 올 때까지 언제나 그랬듯 누군가와의 동행을 기다릴 것이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오늘도 믿고 차를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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