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에 드러난 원자의 모습은 기존의 물리학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듯 했다. 매우 작은 원자핵이 중심에 있고 멀리서 핵 주위를 돌고 있는 더욱 작은 전자 이외에 대부분이 텅 빈 공간이란 것도 그렇지만 전자의 운동에 의한 전자기파 방출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점은 납득하기 힘든 점이었다. 물리학사를 찬란히 빛냈던 법칙들을 무시하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당시 원자와 관련된 또 하나의 실험이 기체에 의한 선스펙트럼이었다. 방전관에 기체를 채우고 강한 전압을 걸어주면 빛이 나오는데 그 빛을 프리즘을 이용하여 주파수(색깔)에 따라 분리하는 과정이 스펙트럼이다. 그 결과로 단일한 색깔의 빛들이 불연속적으로 나타났는데 그림은 수소(위)와 헬륨(아래)에 의해 나타난 스펙트럼이다. 이는 모든 색깔이 빠짐없이 나타나는 백열등이나 태양 빛의 스펙트럼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기체 원자의 구조에 대해 무언가를 암시해주는 듯 했다. 이때 덴마크 출신의 매우 지적인 물리학자였던 닐스 보어가 등장한다. 그는 러더퍼드의 태양계 모형과 선스펙트럼을 조화시키기 위해 전례가 없는 황당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리고 이 이론은 수소 기체가 내놓는 선스펙트럼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일치했으며 이는 보어에게 노벨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보어의 황당한 생각은 다음과 같다. 원자핵을 도는 전자의 궤도는 어떤 특정 궤도들만 허용되며 전자가 그 궤도상에서 돌게 되면 전자기파를 방출하지 않으며 따라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특정 궤도가 존재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어떤 궤도들이 해당하는 지는 정할 수 있었다. 그럼 언제 원자는 빛을 방출하는가? 특정 궤도들 가운데 전자가 바깥 궤도로부터 안쪽 궤도로 도약(jump)하면서 빛을 내보낸다는 가설이다. 실제로 바깥쪽 궤도의 전자는 안쪽 궤도의 전자보다 큰 에너지를 갖는다. 보통은 가장 안쪽 궤도에 머물고 있는 전자에 전압과 같은 에너지를 가하면 전자는 순간적으로 바깥 궤도로 도약을 한 후 다시 안쪽 궤도로 도약하게 되는데 이때 두 궤도 간의 에너지 차이 만큼에 해당하는 빛이 방출된다는 것이다. 빛 에너지가 주어지면 아이슈타인의 광전효과에서 밝힌 것처럼 그 빛의 주파수, 즉 색깔이 정확히 결정된다. 전자의 양자 도약 역시 과거에 생각한 적이 없는 황당무계한 생각이었다. 그림처럼 날카로운 선스펙트럼이 나타나려면 전자가 궤도를 이동할 때 어떤 궤적을 그려서는 안 된다. 전자는 바깥 궤도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지면서 안쪽 궤도 어딘가에 나타나야만 합리적인 설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보어는 가장 간단한 원자인 수소에 대해 여러 허용된 궤도들을 구하고 그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양자 도약들을 자세히 계산해서 가능한 빛들의 색깔은 얻을 수 있었다. 수소 원자는 적외선, 가시광선, 자외선 등의 빛을 방출하는데 가시광선에 있어서 그림과 같이 나타난 4개의 선들과 정확히 일치된 결과가 나왔다. 황당한 아이디어로부터 한 번도 성공한 사례가 없는 선스펙트럼의 색깔들을 모두 정확히 맞춘 것이다. 물론 과학계의 많은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실험 사실을 잘 설명했다고 해서 무조건 옳은 이론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과연 보어가 제시한 황당한 아이디어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 전자는 특정 궤도에서만 허용되며 양자 도약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 이 문제는 결국 10여년 후 이전의 뉴턴 물리학을 붕괴시키고 새롭게 등극하는 양자역학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결론적인 모습은 보어가 생각한 대로는 아니었다. 원자는 그보다 훨씬 더 황당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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