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atom)는 만물의 본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물질로 이미 그리스 시대로부터 제안되었다. 그러나 뉴턴 물리학이 완성되어 자연의 많은 현상들을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19세기 말까지 원자의 존재 여부는 오리무중이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원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원자의 존재가 확인되기 이전에 물리학자인 볼츠만은 기체의 성질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기체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들의 운동에 의해 기체의 성질이 드러난다고 주장했으나 많은 학자들에게 비난을 받았고 이로 인해 우울증에 걸리고 결국 목을 매었다. 원자에 대한 모든 것이 드러난 지금 볼츠만은 시대를 앞선 위대한 물리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볼츠만이 죽기 1년 전 26세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명확한 근거로 원자의 존재를 입증했고 그 크기를 이론적으로 계산했다. 그 해는 1905년으로 특수상대성이론과 노벨상을 안겨준 광전효과, 그리고 E=MC2 이라는 유명한 공식을 발표한 해이다. 아인슈타인이 원자에 대한 근거를 삼은 것은 약 80년 전에 식물학자 브라운이 발견한 ‘브라운 운동’이었다. 브라운은 물에 꽃가루를 뿌리고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작은 꽃가루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아인슈타인은 이 꽃가루의 운동이 물을 이루고 있는 미세한 입자들과의 충돌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제안했다. 이 미세한 입자들은 H2O, 즉 2개의 수소와 1개의 산소로 이루어진 분자이며 이는 원자의 존재를 입증하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수학적 계산을 통해 원자의 크기를 제시했는데 그 크기는 100억분의 1 미터로 너무나 작은 크기였다. 이것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크기에 속하는 머리카락의 지름의 10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이후로 원자는 이름대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물질이 아닌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 실험과학자 러더퍼드가 그 구조를 밝히기 위한 실험을 실행했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건너와 맨체스터 대학의 교수가 된 러더퍼드는 당시 폭발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방사능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그는 방사능 입자를 활용하여 원자의 구조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실험을 구상한 것이다. 방출되는 방사능 입자를 금 원자들로 이루어진 얇은 금박을 통과시킨 후 스크린에 도달하는 입자의 분포를 살펴보면 원자의 구조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방사능 입자는 금박을 통과할 때 금박 안에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지나쳤다. 러더퍼드는 통찰력을 발휘해 스크린을 방사능 물질이 있는 쪽까지 확장하여 방사능 입자의 일부가 금박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180도 되돌아오는 입자를 확인하였다. 이로써 원자의 구조는 대부분 텅 빈 공간이며 가운데 아주 무거운 핵이 존재한다고 보여졌다. 즉 태양계와 비슷하게 양전하를 띠며 무거운 핵이 중앙에 정지해 있고 바깥에는 음전하를 띤 가벼운 전자들이 핵 주위로 돌고 있는 모형이 성립되었다. 이 모형은 이전에 상상했던 그 이상의 이상한 모습이었다. 이후 검증된 사실에 의하면 핵은 원자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크기는 원자 전체의 10만분의 1에 불과하다. 축구경기장을 원자라 한다면 핵은 골프공만한 크기로 중심에 있고 전자는 먼지만한 크기로 축구장 바깥쪽을 돌고 있으며 나머지 공간은 텅 비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러더퍼드의 모형은 곧바로 모순을 드러낸다. 이는 19세기말에 완성된 전자기학의 확실한 이론에 의한 것이어서 그 모순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전자기 이론에 의하면 원자 내의 전자처럼 전기를 띤 입자가 가속운동할 때에는 전자기파 (빛)을 방출하면서 스스로 에너지를 잃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전자는 핵쪽으로 끌려들어가면서 사이의 빈 공간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원자는 결국 붕괴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원자는 늘 같은 크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 닐스 보어가 등장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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