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시작하기 직전 물리학자들은 이제 더 이상 자연에 관해 새롭게 나올 지식은 없다고 생각했다. 단 몇 가지 석연찮은 문제들이 있긴 하지만 곧 해결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문제들은 모두 빛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중 하나는 맥스웰이 전자기학을 완성하며 이론적으로 도출한 전자기파, 즉 빛의 속도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고, 다른 문제들은 뜨거운 물체로부터 나오는 빛의 색깔에 따른 세기의 관계가 이론치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흑체복사), 그리고 금속에 빛을 쬐면 전류가 발생하는데 이때 실험 결과가 빛이 파동이라는 가정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광전효과)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물리학 전체를 지배해온 뉴턴의 패러다임을 붕괴시키고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했다. 주변에서 만류한 물리학자의 길을 택한 막스 플랑크는 흑체복사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면서 1900년 놀라운 통찰력을 발휘하며 모순을 해결하였다. 그런데 빛에 대한 이론적 가설이 너무나 이상해서 스스로도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확신하지 못했다고 한다. 플랑크의 가설에 의하면 뜨거운 물체로부터 나오는 빛은 전형적인 파동의 특성처럼 연속적으로 방출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입자와 같이 띄엄띄엄한 에너지 덩어리로 방출된다. 이 가정은 빛에 관한 기존의 파동론에 중요한 문제를 던지는 것이었다. 5년 후인 1905년 아인슈타인은 26세에 또 다른 문제인 광전효과에 도전장을 내고 모순적인 실험결과는 빛이 입자처럼 행동함을 입증했다. 그는 같은 해에 특수상대성이론과 최초로 원자의 존재를 입증한 브라운 운동에 대한 논문도 함께 발표함으로써 ‘기적의 해’를 만들었는데 광전효과에 대한 설명으로 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금속 내의 전자와 충돌할 때 분명히 입자로서 행동하며 빛 입자의 에너지는 빛의 색깔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빨간 색 빛 입자보다 보라 색 빛 입자가 더 큰 에너지를 갖는다. 이 사실로부터 빛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다시금 큰 혼란이 생겼다. 분명 빛은 이중슬릿 실험에서 보여준 간섭무늬를 통해 파동임이 분명한 상황이었는데 파동성과는 근본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입자성이 확인된 것이다. 이중슬릿에 의한 간섭실험에서는 분명 파동이었지만 흑체복사나 광전효과에서는 분명 입자였다. 둘 중 어느 것이 맞는지 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모든 물리학자가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빛은 양립할 수 없는 두 성질을 동시에 갖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이른바 ‘이중성(duality)’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결론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왔다. 1923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드브로이는 자신의 학위 논문을 통해 빛이 이중성을 갖는 것처럼 전자와 같이 분명히 입자인 물질도 파동성을 가질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빛뿐만 아니라 미시세계의 모든 존재들은 이중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몇 년 후 이 주장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원래 실험은 복잡하지만 궁극적으로 빛의 파동성을 입증했던 이중 슬릿에 빛 대신 전자총을 쏘아 스크린에 나타나는 결과를 확인했을 때 빛과 똑같은 간섭무늬가 나타난 것이다. 드브로이는 이 결과를 ‘물질파’라고 불렀다. 그러나 분명히 입자였던 전자의 파동성은 더욱 오리무중이었다. 드브로이는 실제 파동이 입자를 감싸며 이동한다는 모형을 생각했으며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적극 동의했다. 이제 이중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해결의 핵심은 전자가 보이는 파동성의 궁극적인 정체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덴마크에서는 원자의 구조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통해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주장을 내세우는 과학자 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하는 코펜하겐 학파로 불렸다. 보어에게는 물리학에서 이어져 온 어떤 전통도 중요하지 않았으며 언제든 급진적인 주장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음 글에서 오늘날의 양자역학을 정립한 코펜하겐 학파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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