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11세 때인 1548년(명종3년)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무려 아홉 차례의 과거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닉네임을 가졌던 율곡(栗谷) 이이(李珥:1537~1584)선생께서 당파 싸움을 보면서 당쟁은 나라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면서 「세상에는 둘 다 옳고, 둘 다 그른 경우가 있다. 지금 두 파의 싸움은 나라와 백성을 도무지 생각하지 않으니 둘 다 그른 경우이다. 마땅히 화해해야 옳은 일이요, 한 편만을 고집하면 두 편의 사이를 더욱 벌리는 결과밖에 안 된다.」고 설파했다. 이를 양시양비(兩是兩非)의 논리라고 한다. 「전하, 음식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식탁을 가득 채워 서로 자랑하는 것이 되었고 의복은 몸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화려함을 서로 뽐내는 것이 되었습니다. 옷 한 벌의 비용은 헐벗은 자 열 사람의 옷값이 될 것이오, 밥 한 상의 비용은 굶주린 자의 두어 달 식량이 될 것입니다. 열 사람이 밭을 갈아 한 사람을 먹이는 데도 부족한데 일하는 자는 적고 먹는 자는 많으며 베 짜는 적고 입는 자는 많으니 어찌 백성이 굶주리지 않겠으며 헐벗지 않겠습니까?」 선생께서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고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애민의식을 강조한 『만언봉사』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선생은 정치하는 사람은 스스로 수양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백성들의 고통을 해결하고 궁극적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면 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 하였다. 은퇴 후 고향에 돌아와서는 수많은 상소문을 올렸다. 선생께서 세상을 뜨기 1년 전(1583) 병조판서로 있을 때 선조에게 〈시무육조(時務六條)〉를 바치며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올렸다. 1조:어질고 유능한 선비를 신임할 것. 2조:군사를 양성할 것. 3조:산업을 진흥하여 재물을 풍족히 할 것. 4조:변방의 경비를 굳건히 할 것. 5조:전투용 말을 준비할 것. 6조:교육에 힘쓸 것을 강조하였는데 당쟁을 조장한다는 동인(東人)들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난 후 이듬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예컨대 한 젊은 사람이 젊고 건강했을 때 주색에 빠져서 몸이 많이 손상했어도 혈기가 왕성하여 손상된 것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년에 이르면 해로운 독이 몸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한꺼번에 나타납니다. 그때 가서는 아무리 근신을 하고 조리를 하여도 원기가 없어져 걷잡을 수가 없게 됩니다. 지금의 상황이 꼭 이와 같으니 10년을 지나지 않아서 큰 재화와 변란이 닥칠 것입니다.」 당파의 영향으로 입지가 좁아진 선생께서 병을 앞세워 벼슬에서 은퇴하려고 할 때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은 선생의 은퇴를 만류하면서 「깊은 병이 든 부친이 약사발을 집어던지기로서니, 울면서 약 들기를 계속 권해야지, 그냥 물러서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율곡이 세상을 떠나고 5년 후(1589:선조22) 조선 최대의 정치적 사건인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는 서인의 주도하에 동인을 탄압하는 기축옥사(己丑獄死)이다. 3년 동안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무고와 조작, 연좌 등의 이유로 천 명이 형을 받았는데 이는 4대 사화(무오사화‧갑자사화‧기묘사화‧을사사화)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였다. 이 사건이 가져다 준 폐해는 조선 사회에 커다란 후유증을 안겨주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임진왜란을 대비하지 못했고, 당쟁을 격화시켜 조선 사회가 암흑기로 빠져드는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토정의 충고처럼 율곡이 조정에 남아서 책임정치를 구현했더라면 조선이 악화일로로 달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시습(1435∼1493)이 술에 취해 걸어가다가 영의정 정창손(1402∼1487)이 자나가는 것을 보고 “야, 이놈아 너는 이제 그만 좀 해먹어라!”고 외치면서 세상을 향해 날린 최고 조롱의 시 한 수(영산가고:詠山家苦)가 떠오른다. 농부는 한 해가 다 가도록 땀 흘려 애쓰고, 누에치는 아낙네는 봄 내내 쑥대머리로 고생하는데, 취하고 배부르고 좋은 옷 입은 무리들은 성(城) 안에 가득하다. △1965년 월남 파병 반대 ‧1971년 경부고독도로 건설 때 야당의 반대 △밀양송전탑 건립 반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쇠고기 파동 때 촛불시위로 국론만 분열되지 않았던가? 억대 연봉을 받는 은행원들이 월급 더 달라고 파업들을 하고 있으니 이들이 과연 양심이 있는 자 들인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약사발을 집어던지더라도 울면서 약 들기를 계속 권하는 심정으로 국익을 위한 일이 무엇인가? 를 좀 더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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