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 살이 우리는 함양인입니다 고향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아련한 추억에 빠져든다. 향우들은 고향 함양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고 그립고 애틋하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고향 함양에서의 삶 보다는 타지의 삶이 대부분인 향우들은 언제나 고향 함양의 일이 우선이다. 향우회를 만들고 동창회에 참석하고, 같은 고향 함양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진한 형제애를 나눈다. 고향 일이라면 한달음에 달려와 고향과 지역 발전을 위해 힘쓴다.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에서 함양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가고 있는 재경 향우들. 고향 함양을 그리며 살아가는 재경향우회와 각 읍면 향우회를 통해 팍팍했던 서울살이와 현재의 삶, 그리고 향우 등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편집자주> 대쪽같은 성격이지만 고향사랑은 ‘애틋’ 호불호(好不好)가 분명한 대쪽 같은 성격이다. 약속은 작은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킨다. 평생을 몸담은 직장이지만 퇴직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거리낌 없이 드나든다. 성격은 불같지만 시원시원하다. 때로는 어느 누구보다 다정다감하기도 하다.서울 잠실 롯데월드의 산증인 노시범 (주)동림 대표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노시범(65) 대표는 1978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롯데호텔에 입사해 2008년 정년퇴직 때까지 30년을 오직 롯데맨으로 일했다. 퇴직 후에는 물품배송업체인 (주)동림과 인력파견 업체인 (주)GoodWill EnC를 창업해 대표이사를 맡아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만남부터 의문 투성이?평생 롯데맨으로 직장생활을 한 노 대표를 서울 잠실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 만났다. “왜 롯데월드에서 만나자고 할까? 인력파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니 이곳 어드벤처에 관리인력을 파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곳에 사무실이 있나?” 별별 상상을 다 하며 취재진은 노 대표와 만나기로 한 롯데월드로 향했다. 교통사정을 예측할 수 없으니 일찍이 약속장소로 출발했다. 약속 시각보다 30분이나 여유 있게 도착했다. 그런데도 그는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놀이기구들이 내뿜는 소음을 비집고 어드벤처내 조용한 카페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카페로 이동하는 내내 어드벤처 직원들은 노 대표를 반갑게 맞이했다. 노 대표는 이런 직원들을 격려라도 하듯 일일이 악수하며 어깨를 다독여 준다. 어떤 직원들은 멀리서 달려와 인사하는 이도 있다. “아, 노 대표가 파견한 직원들이 확실 하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확신은 오래가지 않았다. 카페에 자리한 노 대표는 “이곳을 관리 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다”고 했다. “롯데를 빼놓고는 내 인생을 이야기할 수 없다”며 이곳에서 만나자고 한 이유를 설명했다. 약속장소를 이곳으로 정한 것에 대한 궁금증은 일거에 해소됐지만 새로운 의문이 밀려들었다. 퇴직한 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는지? 어떻게 직장생활을 했기에 직원들은 여전히 그를 반갑게 맞아주는지? 등등 숱한 의문부호가 줄을 잇는다.대단했던 부모님의 교육열“인사부서에도 있었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직원들도 있다. 일 처리를 잘못해 혼난 직원들도 많다”며 “개인적인 감정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회사를 위해서 한 일이고, 내가 했던 게 옳지 않았다면 그럴 수 없겠죠?”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노 대표는 “이곳에서 20년 넘게 일한 청소 아주머니도 계시는데 지금도 나를 보면 청소하다 말고 달려와 인사를 한다”며 “그때는 정말 기분 좋고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노 대표는 유림면 화촌마을에서 3남 5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로는 누나 두 분이 있다. “시골 살림이 뻔한 것 아니냐”며 “집안 형편이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가정이었다”고 했다.“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의 교육열이 참 대단하셨던 것 같다”는 그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8남매를 교육 시키는 게 쉽지 않을 텐데...”라며 부모님 생각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노 대표의 부모님은 유림초등학교를 졸업(제29회)한 어린 그를 아무 연고도 없는 진주로 보냈다. 그때만 해도 외지로 나가 공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었다. 간혹 외지로 나가 공부하는 경우라고 해야 친인척이 사는 곳으로 가는 게 전부였던 시절이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노 대표를 교육도시 진주에 유학시켰다. 노 대표의 아버지는 유림면장을 지낸 공직자였다. 조부도 당시 면의회 의장을 지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교육열도 부친 못지않았다. 가부장적인 시대에 할아버지의 동의 없이는 누나들이 대학을 다니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재경 향우회 초창기부터 참여노 대표는 “부모님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이 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 노 대표는 고향 사랑도 애틋하다. 1년에 열 번이상은 고향을 찾는다는 노시범 대표. 5월 어버이날과 8월 면민체육대회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고향을 찾아 고향 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향우회도 마찬가지다. 해외에 있거나 피치 못할 약속이 아니면 반드시 참석할 정도로 열성이다. 향우회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젊었을 때부터 참석했다. 1980년대 초 재경 함양군향우회가 재결성된 뒤 지금까지 꾸준히 향우회에 참여하고 있다, “향우회에 나가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고향 사람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초창기부터 자연스럽게 향우회에 참석하게 됐다”고 한다.노 대표는 지난 2011년부터 2년동안 재경 유림면향우회장을 맡아 향우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고향과의 유대를 더욱 강화했다. 특히 여성위원회를 창립해 여성향우들의 참여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림초등학교 총동창회장을 지내면서 선후배 간의 정을 돈독히 하고 모교 발전에 기여한 공로도 상당하다.노 대표는 자신에게도 굉장히 엄격하다고 한다. 오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은 폭음을 할 법도 한데 “지금까지 살면서 술 먹고 실수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피우던 담배도 20년전 금연을 결심한 뒤 지금까지 한 개비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것을 철칙으로 여긴다. 자신과의 약속도 마찬가지다.정년퇴직 후 사업가로 변신모임이나 행사 등에 대한 참석여부를 물어오거나 어떤 일을 결정할 때는 “되면 된다.” “안 되면 안 된다.” 즉시 가부를 밝힌다고 한다. 이것저것 제는 것을 싫어한다. 두루뭉술한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의 대쪽 같은 성격은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피곤할 정도라고 스스로 말한다. 그러나 이런 성격을 고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단점보다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노 대표는 대학 졸업을 앞둔 1979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호텔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던 시절이다. 대학까지 졸업하고 여관 같은 데서 일한다고 안타까워하는 분도 있었고 수군거리기까지 했던 때다”고 했다. “고향 분들이 단체로 서울에 여행 오셔서 내가 근무하던 롯데호텔을 다녀갔는데 그 뒤부터 내가 고향에서 제일 출세한 사람으로 소문이 났었다”며 너털웃음을 웃었다.롯데호텔 기획실에 발령받은 노 대표는 기획실 영업기획팀에서 일하다 잠실롯데월드 프로젝트팀의 3명 중 1명으로 차출됐다. 당시 노 대표는 호텔 기획실 대리로 놀이시설을 담당했다. 계획단계부터 참여해 1989년 잠실 롯데월드 오픈에서 정년퇴직을 1년 앞둔 2007년까지 이 곳 롯데 어드벤처와 운명을 함께한 우리나라 1호이자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실내놀이동산의 산증인이다.롯데월드를 탄생시킨 노 대표는 롯데월드에서 경영지원부문장을 비롯해 마케팅부문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치며 우리나라 놀이문화의 한 획을 그었다.2008년 부산롯데호텔에서 정년을 맞은 노 대표는 1년 반을 준비한 끝에 이듬해 서울에서 물류배송 업체인 ㈜동림을 창업해 사업가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노 대표는 “퇴직 후 관계사의 고문이나 임원으로 들어가 일하기보다 내 이름을 걸고 당당하게 일하고 싶었다”며 창업 배경을 이야기했다. ㈜동림은 전국 70여 곳의 롯데마트와 슈퍼에 물품을 배송하는 물류회사다. 2015년에는 (주)GoodWill EnC도 창업해 회장을 맡고 있다. 굿윌은 관리인원만 1천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주요 택배회사들이 주거래처다. 화물터미널에서 화물 분류작업에 필요한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노시범 대표는 “나는 사업가는 아니다”면서 “그동안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았으니 일흔 살이 되면 일선에서 물러나 고향과 서울을 오가며 여유 있는 삶을 즐기고 싶다”고 말한다. 최경인 대표이사·정세윤 기자·최원석 서울지사장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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