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 서울살이, 우리는 함양사람입니다 ③고향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아련한 추억에 빠져든다. 향우들은 고향 함양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고 그립고 애틋하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고향 함양에서의 삶 보다는 타지의 삶이 대부분인 향우들은 언제나 고향 함양의 일이 우선이다. 향우회를 만들고 동창회에 참석하고, 같은 고향 함양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진한 형제애를 나눈다. 고향 일이라면 한달음에 달려와 고향과 지역 발전을 위해 힘쓴다.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에서 함양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가고 있는 재경 향우들. 고향 함양을 그리며 살아가는 재경향우회와 각 읍면 향우회를 통해 팍팍했던 서울살이와 현재의 삶, 그리고 향우 등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편집자주> 고향 마천은 세상에서 가장 큰 빽이 되어준 곳입니다재경 마천면향우회는 재경 향우회 중에서도 가장 단합이 잘되기로 유명하다. 한 번 행사를 할라치면 수백 명의 향우들이 모이는 것은 기본이고, 산악회나 골프회 등 친목 모임도 성황을 이루는 곳이 바로 재경 마천면향우회다. 이 같은 단합된 힘은 마천인들의 끈끈한 정과 산골 사람들의 인심도 있겠지만 지난 2015년 마천면향우회를 이끌었던 최정윤 회장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최정윤 전 회장은 다소 우락부락한 모습이지만 향우들을 챙기는 마음 씀씀이는 마천의 자랑 지리산만큼이나 넓다고 정평이 나 있다. 마천 재경 향우들의 구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최정윤 전 재경 마천면향우회장을 만나 그의 삶과 고향 마천에 대해 들어봤다. 의리의 사나이 최정윤 최정윤 회장을 만난 곳은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의 기천농산 한우직판장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이제 막 도축된 소들을 부위별로 잘라 포장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평생을 축산물 도매업을 하고 있는 최정윤 회장. “이렇게 먼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하다.” 최정윤 회장은 1960년 곳은 마천면 음정마을에서 태어났다. 음정마을은 마천면사무소에서도 약 10km 정도 떨어진 외진 곳이다. 그는 마천초등학교 제40회, 마천중(8회) 졸업생이다. “중학교 다닐 때 10살 차이나는 큰형님이 서울 마포에서 자리를 잡고 있어, 고등학교부터는 서울에서 다닐 수 있었다” 최 회장은 지난 20여년간 유통업에 종사했으며 한때 외도 아닌 외도로 노무용역회사를 10년간 경영하다가, 본업인 축산물 유통업으로 돌아와 현재 ㈜기천을 이끌고 있다. 평생을 함께한 축산물유통 재경 마천 향우들은 유독 축산물유통에서 많이 일한다. 조금은 험한 일이지만 모두다 일가를 이룰 정도로 성공했다. “원방장학회를 설립하신 故 박경호 선생님께서 이쪽으로 일을 하셔서 후배들을 많이 이끌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큰형, 작은형, 작은아버지가 이 계통에서 일하셨다.” 최 회장의 가족들도 이쪽 계통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최 회장은 대부분 소매 보다는 도매로 정육점이나 백화점에 납품한다. 학생 때부터 형님이 하시는 도축업을 옆에서 지켜봐 온 그는 오래전 밀도살이 어느 정도 성행하던 시절, “강화도 능곡 등에서 돼지를 잡아 자전거에 싣고 들여왔다. 그 때는 밀도살에 대한 단속이 심했고, 검문도 엄청났다. 그렇게 가져온 고기를 형님에게 내미니 혼을 내시기도 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모험담도 이야기했다. 80년대 90년대는 우리나라 경제의 호황처럼 육가공업체 또한 활황을 맞았다. “그 때는 한달에 800마리씩 소를 잡을 때였다. 항상 봄날만 있을 줄 알았다” 수입소 들어오기 전까지도 아주 좋았다. 현재는 수입소에 빼앗겼던 것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다. 언제나 봄날 같이 사업이 번창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천직으로 여기던 사업을 접고 다른 사업에 손을 대면서 어려움이 있었다. “한때 용역 일에 손을 댔었다. 한 10년 그 일을 하고 나니 그 동안 벌었던 것 다 까먹고 다시 원래 일로 돌아오게 됐다” 잠시의 외도 이후 마음을 다잡은 그는 천직인 본업으로 돌아왔다. 용인에서 대형 식당도 해 봤지만 역시나 천직은 따로 있었다. 위기, 그리고 성공신화 그렇게 2011년이 밝아왔을 즈음. 어느 날 ktx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던 길에 우연히 창밖으로 비치는 풍경, 끝없이 펼쳐진 공장지대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 저기가면 뭘 해도 먹고살 수 있겠구나. 그렇게 시작된 것이 화성과의 인연이다” 화성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기천’이라는 곳에 발길이 머물렀다. 화성에 사는 지인에게 어떻냐고 물으니 ‘기천(氣天), 하늘의 기운을 받는 곳으로 남자가 들어가면 부자가 되어 나온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그는 화성시라는 낮선 곳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가게 문을 열어 놓고 달랑 현수막 한 장만 붙여 놓았었다.” 정말 하늘의 기운을 받은 것일까. 손님들이 한 둘 찾아오기 시작하고, 이것이 소문이 나면서 문전성시를 이뤘다. ‘돼지보다 싼 소’라는 소문이다. 10년간의 외도 이후 본업으로 돌아와 또다시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이다.성공은 부지런함에서 왔다 최정윤 회장은 평생을 새벽 2~3시에 일어났다. 새벽 일찍 열리는 우시장으로의 출근이 그의 가장 큰 일이기 때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우시장을 들렀다가 목장, 그리고 가게로 나가는 것이 그의 하루 일상이다. “새벽에만 다니니 간첩인줄 알 정도였다. 새벽 2~3시에 나갔다가 아침에 다시 들어와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그는 직접 소도 기르기 위해 충청도 홍성지역에 150마리 규모의 대형 목장도 운영한다. 홍성이 돼지고기와 소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육하고 있는 곳이다. 그가 한 달에 소비하는 소는 보통 50~60마리 정도다. 엄청난 규모지만 예년에 비해 많이 줄었다. 가장 그리운 이들 향우 최정윤 회장은 2016년 11월20일 임기 2년을 끝으로 향우회장직을 물러났다. 그의 임기 동안 마천면향우회는 끈끈한 향우의 정으로 똘똘 뭉쳐 어느 향우회보다 단결하는 조직으로 만들어졌다. 처음 그가 향우 회장직을 맡는다고 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전임 박태갑 회장과의 연배 차이가 11살로 젊은 회장이 과연 향우회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까라는 기우에서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이러한 기우를 삽시간에 해소했다. 마천면향우회는 그의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 그리고 허심탄회한 성격으로 원로 향우들과 선후배들을 대하니 향우회가 더욱 활성화되었다. “마천면향우회는 11개 읍면 향우회 중에서 가장 결집력이 좋다. 등산회나 골프회 역시 한번 모이면 엄청나다” 최고의 고향 마천 자랑인 셈이다. 실제로 마천면향우회 정기총회에는 300여명의 향우들이 참여할 정도다. 또한 40대 젊은 마천 향우들의 참여 또한 여타 향우회와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마천은 향우 선후배가 모여서 한 번도 말다툼이나 소란이 일지 않았다. 그 만큼 선후대간 우애가 돈독하다” 은근 마천면향우회를 자랑할 때는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최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고향 마천의 소식과 여러 현안들이 중간중간 쏟아졌다. 내년 지방선거, 그리고 조합장 선거 등 먼 타지 서울에 있으면서도 고향의 소식에 목말라하고 고향을 걱정하며, 고향 발전을 염원하는 모습이었다. “마천중학교 총동문회 주관회기에서 자연스럽게 향우회로 참여가 이어지는 것 같다. 아직도 젊은 향우들이 많은 곳이 마천향우회다” 마천면향우회에 대한 자랑하는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아직도 마천향우회에서 고향 사람들의 정을 느끼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최정윤 전 회장이다. 고향 마천, 그리고 서울 인근에서 8남매 모두가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다. “우리 가족이 모두 모이면 50명이 넘는다. 자주 만나 가족간의 정을 나누고 있다” 그는 고향 마천의 경조사, 각종 축제장에도 되도록 참여해 고향 사람들과의 정을 나눈다. 고향에는 아직 농토도 있고 친구들도 엄청나다. 그를 따르는 고향 후배들도 많다. “친구 5명이서 모여 천왕봉이 보이는 곳에 집을 지어 함께 살기로 약속했다” 형제처럼 지내는 친구들과 나눈 약속으로 20여 년 전부터 매달 5만원씩 모은 돈으로 고향에 집을 짓고 함께 살자는 그 날의 약속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고향이 있어야 저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의 고향 마천은 언제나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빽이 되어준 곳이며, 언제가도 저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곳입니다.” 최정윤 회장과 그의 고향 마천, 그리고 재경마천면 향우회의 단합과 발전은 사람냄새 가득한 선후배들의 정에서 오는 것 같다. 최경인 대표이사·최원석 서울지사장정세윤·강민구 기자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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