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장기녀일지라도 늘그막에 지아비를 따른다면 한 평생의 분냄새가 허물될 것이 없고 열녀일지라도 머리가 세어서 정조를 잃는다면 반평생의 수절이 모두 허사가 된다. 옛말에 이르기를 ‘사람을 볼 때에는 다만 그 생의 후반을 보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로다. 그만큼 노년의 처세가 삶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이다.<원문原文>聲妓(성기)도 晩景從良(만경종랑)하면 一世之胭花無碍(일세지연화무애)하고 貞婦(정부)도 白頭失守(백두실수)하면 半生之情苦俱非(반생지청고구비)니라. 語云(어운), 看人(간인)에 只看後半截(지간후반절)하라 하니 眞名言也(진명언야)로다. <해의解義>관 뚜껑을 덮은 뒤라야 그 사람을 옳게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언제나 변화의 소지를 스스로 지니고 있으므로 착한 사람도 마음이 혼탁에 물들어 악하게 될 수 있고 악한 사람도 잘못을 뉘우쳐 착하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추구집(推句集)에 ‘인심은 조석변(人心朝夕變)이요 산색은 고금동(山色古今同)’이란 문구가 있다. 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는데 산의 빛깔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푸르다고 하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일생을 다 살펴보지 않는 시점에서 아무도 이러니저러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평생을 웃음과 몸을 팔던 기녀도 글그막에 분냄새를 씻고 결혼하여 남편을 섬기며 정조를 지킨다면 앞의 허물은 과히 문제삼을 것이 못된다. 그러나 정조가 굳은 여념집의 여자도 한평생 절개를 자키다가 머리가 희어지는 늘그막에 실절(失節)하게 된다면 한 평생 절개를 지켜온 보람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그런 뜻에서 ‘사람을 알려면 그 후반의 생이 어떠했는지를 알면 된다’고 한 옛 말이 참으로 명언인 것이다.<주註>聲妓(성기) : 소리라는 기생. 晩景(만경) : 늘그막, 만년. 胭花(연화) : 백분(白粉) 즉 화육계 생활. 無碍(무애) : 탓할 것이 없음. 白頭(백두) : 흰머리. 失守(실수) : 절개를 잃음. 情苦(청고) : 깨끗한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애쓰고 고생한 것. 청조고절(淸操苦節)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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