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오일장이 열리는 곳에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 마치 잘 발효된 된장과 간장 같은 야리꼬리한 냄새랄까, 아니면 잘 발효된 거름이 풍기는 쿰쿰한 냄새랄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냄새다. 그것은 삶의 나이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무엇을 간지럽힌다. 오일장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장사꾼들이 더 많은 듯 보였다. 난전 옷걸이에 걸린 상의가 손님을 부르는 듯 봄바람에 춤을 추었다. 마치 막걸리 한잔을 걸친 아저씨가 추는 춤 같았다. 손님은 적었지만 장은 구색을 다 갖추었다. 봄꽃을 파는 젊은 새댁, 생선을 파는 아저씨 그리고 과일과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었다. 시장 골목을 들어서자 그곳에도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푸성귀를 팔고 있었다. “사가이소.” 다소곳이 손님을 불러 모으는 목소리에 끌려 말린 달래 잎 한 묶음을 샀다. 닭발도 사고, 두부도 한모 샀다. 검은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는 손가락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추운 날에는 그 손가락이 곱아 보는 나를 안타깝게 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좌판 앞에서 국수를 먹는 할머니가 보였다. 장 한복판에서 국수를 먹어야 하는 할머니, 장사도 되지 않기에 그나마 한 끼의 국수 값도 아까울지 몰랐다. 그 순간 심장이 징 하니 울렸다. 젊은 날의 내 어머니도 저런 어려운 시절을 거치며 육남매를 키웠다. 아니 누구나의 어머니가 저러했을 것이다. 시골에서는 현금이 귀하기 마련이다. 대부분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기에 배는 굶지 않았지만 돈이 아주 필요 없는 것은 아니었다. 농사꾼이었던 어머니는 자식들의 새 옷이 필요하거나 신발이 필요할 때는 농사지은 물건을 머리에 이고 손에 쥐고 오일장에 가고는 했다. 머리에 이고 손에 쥔 것은 어떤 날은 노란 콩이었고 어떤 날은 빨간 고추였다. 한 두어 번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장에 따라 간 적이 있다. 그날이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이었는지, 코스모스 하느작거리는 가을날이었는지 모르겠다. 읍에서 열리는 오일장의 풍경은 산골소녀에게 얼마나 커다랗게 다가왔던가. 사람들이 가득했고 흥정소리가 시끄러웠다. 이런 곳이 도시구나 싶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았다. 손을 놓치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장이 끝나는 곳에 겨우 자리를 하나 얻어 물건을 펼쳐놓았다. “사가이소” 말 한마디 외치지 못하고 마냥 손님을 기다렸다. 어머니의 순박함이 보였던 것일까. 신기하게도 호객 한마디 하지 못하는 초보 장사꾼의 물건을 누군가가 사갔다. 현금을 손에 쥔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이리저리 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샀다. 세월 따라 그때의 기억이 가물거리며 잊혀졌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오일장에 오면 이상한 냄새가 났다. 허파에 스며드는 아릿함에 잠시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마치 내 속에 있는 뭉근한 무엇이 온몸으로 짙게 펴져나가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의 아스라한 장날 풍경이 살아났다. 그날의 어머니인 듯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편한 바지를 입고 뽀글뽀글 파마를 한 젊은 날의 어머니······. 세월 따라 당신의 모습도 늙어 버린 모양이다. 올망졸망 푸성귀를 펼쳐놓고 자울자울 졸기도 한다. 그리고 이상한 냄새를 풍긴다. 그 냄새는 먼 그리움을 불러온다. 야리꼬리하면서도 쿰쿰한 그 냄새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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