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나무를 만났다. 뿌리와 가지가 잘린 채 몸통만 남은 모습이었다. 혼자 서 있지 못하고 소나무에 의지 한 채 서 있었다. 뿌리가 없으니 혼자 힘으로는 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예전에 나무는 ‘참나무’로 불렸다. 허나 몸통만 남은 나무를 사람들은 더 이상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무의 몸통에 구멍을 뚫고 버섯 종균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버섯나무’ 혹은 골목(榾木)으로 불렀다. 종균을 품은 나무는 분명 참나무인데도 더 이상 본래의 이름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생명을 가진 나무는 스스로 광합성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버섯나무가 되어버린 나무는 스스로 광합성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죽은 것일까. 하지만 버섯이라는 생명이 자란다. 참나무는 뿌리를 잃어 버렸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병문안을 다녀왔다. 병실 문을 들어서니 침상에 누운 시매부가 보였다. 숨쉬기를 멈춘 사람처럼 누워있었다. 병상 옆에 앉은 시누의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무채색의 슬픈 그림자로 앉아 있었다. 시매부의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넸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또한 손과 발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나무 등걸처럼 누워 있었다. 나무 등걸?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주 잠깐, 길에서 만난 버섯나무가 보였던 것이다. 눈을 깜박이고 바라보니 버섯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시매부가 쓰러지기 전, 꿈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을 보았다. 한 번도 나타나지 않던 분이었다. 아버님은 얼굴을 숙이고 하염없이 울고 계셨다. 그 모습이 너무 슬퍼 감히 왜 우는지 물어 볼 수 없었다. 흔히 조상이 꿈에 나타나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했다. 전깃줄에 부딪치는 바람 소리처럼 아버님의 소리 없던 울음이 한 동안 귓가에 쟁쟁 거렸다. 아무 일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 날 손위 시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시매부가 무단히 일어서다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졌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머리를 부딪쳤고 코와 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딱히 아프지 않았기에 아무이상이 없는 듯 보였다. 흘러나온 피를 닦고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서서히 두통이 시작되었다. 약하게 시작되었던 두통은 점점 심해져 머릿속을 다 잡아 먹어버릴 듯 아파왔다. 급히 응급실로 갔다. 병원 문턱을 넘을 때만 해도 또렷하게 의식이 있었다. 하루가 꼬박 지나고 시누는 목이 쉰 소리로 혼수상태라며 울먹거렸다. 시매부는 혈관이 터져 머릿속의 피를 제거했다. 상처 입은 뇌가 자꾸 부어올랐다. 왼쪽 뇌가 균형을 잃고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왼쪽 뇌 일부를 잘라내야만 했다. 부랴부랴 또 한 번 더 뇌에 칼을 댔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 되어 갔다. 어쩌면 마지막 숨을 내려놓을지 모른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급히 울산으로 향했다. 꿈에 보았던 아버님의 모습이 아리하게 심장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버님은 이것 때문에 우셨던 것일까. 가족들이 한자리에 있었다. 의사는 만날 때마다 생사를 확신 할 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숨 가픈 시간이 가파르게 지나갔다. 다행히 시매부는 위험의 고비를 넘겼다. 당분간 시누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시누가 나의 옷자락을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붙어 있었다. 무엇을 좀 먹으라 하면 화석 같은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힘없는 손을 뻗어 옆에 있는 빵을 조금 먹었다. 시누는 모든 일이 허방을 딛는 듯 아슬아슬해 보였다. 한참이나 손아래 사람인 나를 언니처럼 의지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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