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함양출신 한국수력원자력 축구단 배종우 감독 영면한국실업 축구의 큰 별 지다 배종우 고 대한 한국수력원자력 감독이 지난 10일 향년 5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인은 1954년 경남 함양 운림리에서 태어나 함양초. 함양중. 진주고. 서울산업대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75년 한국전력 축구단에 입단했다. 공격수로 활약하던 고인은 82년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오랜 침체기에 빠져 있는 한전의 부활을 주도했다.84년 현역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프로출범과 함께 여러 프로팀에서 입단제의를 받았지만 끝까지 한국전력과의 의리를 지켰다. 은퇴 후 한전에서 트레이너와 주무. 코치를 역임한 고인은 2002년 한전으로부터 이관된 대전한수원축구단 감독으로 부임했다.전통의 명문팀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부진을 면치 못했던 대전한수원은 2006시즌 종료 후 고인이 요청한 연봉책정시스템과 선수단 정원 증가가 받아들여지면서 재도약했다. 2008년 내셔널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며 한전 시절 포함 8년만에 정규대회에서 우승했다. 2009년에는 전국체전과 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대전한수원은 2010년 전기리그에서 8승4무2패 승점 28점으로 부산교통공사와 인천코레일의 추격을 뿌리치고 대망의 우승트로피를 들었다. 수원시청과의 챔피언결정전 맞대결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내셔널리그 출범 이후 거둔 최고의 성적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고인은 지난 시즌 말미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어용국 수석코치와 서보원 코치에게 팀 운용을 맡기고 치료에 전념했다. 8월 들어 다시 벤치를 지키며 병세가 완화된 것으로 보였으나 결국 영면했다.고인은 고향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고향축구 발전과 후진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80년 한국전력(주)에서 축구꿈나무 육성을 위한 유소년 축구지원사업에 모교인 함양초등학교가 선정되어 지도자 파견과 운영비 지원을 받도록 했다.추모식 열린 대전 한밭운동장이 눈물바다로 변해▲ 고 배종우 감독 추모식이 열린 한밭 벌 ‘눈물’로 물들다. <사진출처/ 저작권자 내셔널리그 스포츠에서 인용>지난 16일 실시된 2011 삼성생명배 내셔널리그 대전한밭 축구 경기장.저녁7시 한수원과 용인시청의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입장하였으며 왼쪽팔에는 근조리본을 달았다. 한수원 벤치에는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숙연한 가운데 고인에 대한 추모영상이 상영되고 추모묵념이 진행된 후 경기가 시작되었다. 지난 세 차례 맞대결에서 2무1패로 열세를 보였지만 이날은 세상을 떠난 감독에게 승리를 안겨주겠다는 굳은 의지와 투혼으로 3:0 완승을 일궈냈다.한편 유족으로 석운미 여사와 1남1녀. 모 임정분. 형 배종원(전 함양군의회의장). 동생 배선자(함양군청). 배종수(포스코건설 부장)씨가 있다. 저 멀리 떠나버린 축구인 배 감독! 친구 종우야!너는 왼발을 잘 써 왼쪽 윙. 나는 중앙센터포워드. 이렇게 시작한 너와 나의 인연으로 우리 군. 서부경남대회에서는 천하무적이 됐고 도 대회서는 진주 봉래에 선골도 넣어 한 때는 모교의 자랑스러운 아이였고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타고난 기술로 정상적인 코스로 진주고. 한국전력선수. 트레이너. 주무. 코치로 선수와 코치진 사이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인정을 받아 대표선수도 탐을 내는 실업팀 감독이 됐지. 초창기 시련은 있었지만 뚝심과 배짱으로 밀고 나가 우승과 준우승으로 회사의 명예와 영광을 안겨주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지.나 역시 군 병역으로 선수생활을 할 수 없자 자기보다 더 잘한다며 걱정하며 운이 없다며 원망하며 위로해준 친구! 첫 휴가 때 날 위로한다고 훈련도 마다하고 시골 내려온 친구! 축협(축구협회)이 아니더라도 축산업협동조합 '축협'에 근무한다고 좋아했던 친구! 동계. 하계 전지훈련 시 해마다 잊지 않고 고향 찾아 친구들. 축구인들과 대포잔을 기울이고 싸인볼을 나눠주며 유달리 고향사랑으로 인정을 베푼 친구! 지난달 아픈 몸으로 날 찾아와 태능에서 함께 점심을 맛있게 먹고 헤어졌는데... 마지막까지 아픈 몸을 어머니께 숨기며 오히려 어머니 몸 걱정 당부하던 친구! 정말 인생의 무상함에 비통한 마음 금할 길 없구나.인명은 재천이라 하였는데 지난 대회 정상의 감독대열에 함께 했다고 좋아하며 더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던 친구. 우리 친구들 또한 축구인과 자주 만나 우정과 정담을 나누면서 오래도록 인생을 같이하였으면 좋으련만. 무엇이 그리 급해 저 세상으로 먼저 가야했단 말인가.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친구가 베풀어준 깊고 두터운 우정의 빈자리가 더더욱 커 보이고 그리워진다. 친구야! 모든 친구와 축구인들은 너와의 이별에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젠 곧 아들 딸 결혼시켜 손자들 재롱 보면서 화목한 가정 기둥으로 즐거운 삶을 영위해야하는데 이렇게 훌쩍 가정과 우리 곁을 떠나다니 비통한 마음 금할 길 없구나. 인정 많고 누구보다 정의감. 책임감이 많았던 친구. 목숨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한 친구. 고통을 참고 견디며 얼마나 아파했을까. 친구로서 ▲ 이재덕 전 함양축구협회장너의 아픈 고통을 함께 해 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친구야! 이제 육신의 모든 고통과 걱정은 다 접으시고 시름과 괴로움도 다 버리시고 저 세상에서 못다 한 너의 꿈 마음껏 펼치길 바란다. 종우야! 훗날 그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친구 재덕이가(전 함양축구협회장) 함양 축구의 정신을 잃은 착잡한 마음. 함양군축구협회 이름으로 올립니다그렇게도 운동장에서나 고향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분인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고향의 축구인들은 모두가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병이 호전되어 다시 운동장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이렇게 홀연히 부모. 형제와 고향 선후배. 사랑하는 제자들을 두고 떠나니 허전하기 짝이 없습니다.우리 함양의 축구인들은 고 배종우 감독이 고교를 졸업해 지난 1975년 한수원 축구팀에 입단해 선수와 코치. 감독에 이르기까지 36년간 한곳에서 헌신적인 축구사랑을 보여준 바 한국의 축구인이라면 모두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동안 지역현실을 감안하면 '축구하면 함양. 함양하면 축구'로 전국 어느 지역보다 축구사랑은 남달라 없어진 축구팀이 생겨나길 갈망하는 선후배가 많지만 예년과 달라 핵가족이라는 여건 때문에 좀처럼 학부모가 축구를 시키지를 못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축구와는 완전히 달라 자기개발과 함께 자율적인 축구로 공부를 하면서 시합을 병행해야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어 학부모가 우려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모두 생각하고 있습니다. 함양군축구협회장 안병명 나아가 가신 분을 추모하면서 그 뜻을 살리기 위함은 함양지역 축구의 부흥에 있어 모두가 바라던 축구부 창단을 위해 반드시 함양중학교를 중심으로 자치단체와 교육청. 함양중학교. 지역주민. 모교 선후배. 축구인이 모두 하나가 되어 보란듯이 만들어 내겠습니다.함양군축구협회장 안병명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