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주룩주룩 제법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곧 아침이 되면 주간함양에서 시행하는 함양의 명산 지리산 산행을 하기로 되어 있는 날인데 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또 일행들과 더불어 천왕봉에 잘 오를 수 있을지 가을 소풍을 가는 초등학생처럼 설레고 제대로 잠이 오지 않았다. 몇 번 자다 깨기를 하고 7시에 출발한다는 보건소 앞으로 나갔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나와 계셨는데 여성분들이 많았으며 낮선 분들도 보여 함양사람들 만이 아니고 타지방에서 오신 분들도 있다는 것을 느꼈으며. 올라가기 어렵고 힘이 든다는 천왕봉을 저 분들도 다 오를 수 있을까 잠시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백무동 주차장에 도착하여 ‘지리산도 식후경’이라고 주간함양에서 나누어주는 맛있는 김밥과 과일 한 봉지를 기분 좋은 마음으로 받아 챙기고. 한국건강연대 대표이며 김윤세 인산가 회장님의 등산 시 주의사항과 등산코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80여명의 일행들과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산행을 시작하였다. 일행 중 개량한복에 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거창에서 오신 50대쯤 되어 보이는 산도사님이 인상적이었는데 등산 중 대화 속에서 그분은 세상살이 순리를 아시는 분 같아 마음이 편안하였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우리들의 가슴에 숱한 애환을 간직한 지리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던 짓궂은 날씨는 온데간데없고 지리산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우리 일행을 반겨 주고 있었다. 지금까지 세 번째로 오르는 지리산이었지만 능선은 그 모습이 장대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높고 파란 가을 하늘과 더불어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그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산행출발에 앞서 단체사진.서암정사 원응(元應) 큰스님께서 지으신 天王峯上朝景壯觀吟(천왕봉상조경장관음) 즉 ‘천왕봉 위에 아침경치의 장관을 읊은 시’ 한 수가 생각났다.칠선골 맑은 물에/ 세상 티끌 씻어내고천왕봉에 올라서니/ 웅장한 기운 이는구나굽어보니 우뚝우뚝/ 일천산 봉우리요구름바다는 아득히/ 만리에 돌아드네처음 도착한 곳은 하동바위였다. 여기에 왜 하동바위가 있는가? 잠시의문이 들었다. 여기도 울산바위처럼 바위가 하동에서 왔는가? 설악산에는 울산바위가 있는데 ‘전설에 옛날 조물주가 금강산의 경관을 빼어나게 빚으려고 전국의 잘 생긴 바위는 모두 금강산으로 모이도록 불렀는데. 경상도 울산에 있었던 큰 바위도 그 말을 듣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으나 워낙 덩치가 크고 몸이 무거워 느림보 걸음걸이다 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은 모두 다 만들어진 후라서 금강산에 가보지도 못하고 현재의 위치에 그대로 주저앉았다’는 얘기이다.하동바위도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가 궁금하다. 옆에 가는 동료에 의하면 옛날 함양군수와 하동군수가 같이 등산을 하다가 함양군수가 하동군수에게 “이 바위를 선물로 주겠다”며 이름을 “하동바위”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4년 마천 애향회가 발행한 <마천향토지(馬川鄕土誌)>에 언제인지 모르지만 하동군수가 지리산 구경을 왔다가 풍광에 반해 실족해서 죽은 바위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천왕봉으로 이어진 수많은 갈래의 등산로 중 하동바위 길은 ‘시원스런 숲길’이 일품이다. 굵은 아름드리 수목이 짙은 숲을 이루었으되 그 수목들 사이에 잡목이 드물고 공간이 시원스레 트여 있어 늘 바람이 자유로이 드나든다. 그사이로 이제 들기 시작한 단풍은 한 움큼 쥐어짜면 연분홍 물감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이 아름다운 풍광을 열심히 찍어대는 어여쁜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셨는데 부산에서 오셨다며 “지리산 산행은 처음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자주 이 등산 대열에 참여하고 싶다”고 하며 부산에 오면 놀러오라고 연락처까지 건네주는 것 아닌가...이마에 옹기솔기 모인 땀을 닦고 헐떡이는 숨을 잠시 몰아 쉰 곳은 참샘이었다. 이 산 속에서 거짓샘이 있다고 누가 시비할 사람도 없는데 참 이름도 예쁘게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샘은 이름 그대로 물맛도 일품이었다. 가져온 물병에 물을 쏟아 버리고 물 한 통 가득 받아 넣고 땀 식기 전에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영산을 오르는 사람들이어서 그럴까 다른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보다 너무 예의가 있고 인사를 잘 하는 것 같다. 아마 어제저녁 산장에서 지내고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분들로 보이는 하산객들이 “반갑습니다. 힘내세요” 라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다. 힘들게 올라가는 우리 일행들에게는 그분들이 대단해 보이고 자랑스러워 “대단하십니다. 즐거운 산행되세요”라며 즐겁게 답례를 한다.해발 1.653미터에 위치한 장터목산장은 1박2일로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룻밤을 쉬어 갈 수 있는 안식처이며 갑작스런 자연재해 발생시 우리를 보호해 주는 산 속의 보금자리이다. 다음 기회에는 이 장터목산장에서 밤이 새도록 지리산을 노래하며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지리산의 품속에 빠져 기를 듬뿍 받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석봉 고사목 지대의 풍광은 정말 일품이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들이 살아있는 모습도. 죽어서 고사목이 되어 있는 모습도 너무나 장관이다. 높은 고지대에서 모진 비바람과 수많은 눈보라 속에서도 꿋꿋이 아름다운 자태를 잃지 않고 등산객을 맞고 있는 그 모습은 너무도 의연하였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자 세차게 바람이 불고 기온이 급강하하여 체감온도는 영하의 강추위로 떨어졌다. 운무가 끼여 제대로 능선을 감상할 수가 없었다. 지리산은 결코 녹녹하지가 않은 산이었다. 드디어 1915미터 천왕봉에 도착하였다.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1번지 분명히 우리군 함양의 땅인 지리산 천왕봉이다. 표지석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의 등정을 반기듯 운무가 잠시 거친 민족의 영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능선의 모습은 우리의 솟아오르는 기상처럼 장대하고 위대하고 훌륭하였다. 일행을 잠시 뒤로하고 함양을 바라보면서 지리산 수호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우리 함양군민들께서 풍성한 가을을 맞게 해 주시고 건강과 행복을 지켜 주시고 우리 일행들의 안전한 산행 마무리를 도와주시옵소서...” 기도가 끝나자 잠시 맑게 개인 가을 하늘이 나타났다. 멀리 함양 한들의 황금빛 모습이 보인다. 칼바람 속에서도 천왕봉에서의 점심 맛은 꿀 맛 그것이었다. 나누어준 김밥에 각자 준비해온 맛있는 반찬과 과일을 김윤세 회장님 김태경 함양경찰서 경무과장님 대로가든 박석규 사장님 경향 각지에서 참여하신 분들과 산도사님. 지리산 롯지의 특별메뉴와 박정희 동료의 솔향기 가득한 술맛은 일품이었다. 이번 산행에서만 천왕봉을 세 번이나 오른 박석규 사장님은 뒤쳐진 일행을 다시 보호해서 동행해준 높은 기사도 정신을 칭찬하고 싶다. 또한 이번 산행을 실무적으로 한 치의 착오 없이 준비하신 주간함양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다음 산행이 기다려진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박종환 前안양·서울북부·함양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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