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영 봉평교회 목사가을에는 ‘깊어간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깊어간다는 말은 부피가 커지고 공간이 넓어지는 뜻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눈에 보이는 부피와 공간과는 다르게 우리의 내면을 바라보게 되는 의미를 주기 때문인 것 같다.가을 들녘에 펼쳐 있는 황금물결의 벼이삭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깊어감의 뜻을 알 수 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연약하게 논바닥에 심겨진 모들이 뜨거운 여름 태양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온갖 비바람에도 견디면서 왕성한 푸르름으로 이삭을 키워오다가. 어느 덧 이제는 누렇게 익은 자신의 겸손히 머리를 숙일 때. 우리는 어느 시인이 표현했듯이 <국화 옆에서> “내 누님같이 생긴 꽃”과 같은 인생의 깊은 연륜과 성숙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누렇던 황금들판도 이젠 하루하루 빠르게 베어지고. 텅빈 바닥을 드러내고. 나락을 거두어들일 때에 진정 깊어 가는 가을의 절정을 본다. 분명 깊어진다는 것은 비워 가는 것이다. 나의 생각을 비워내고. 내 욕심을 비워내며. 세상의 현란한 출세와 성공의 호기심을 비워 가는 것이다. 요즘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커져 가는 것만을 생각한다. 그래서 높은 100층 빌딩을 세우는 일을 경탄한다. 대 토목공사를 하는 일을 큰 사업이라고 한다. 산을 뭉개서 망망한 바다를 메우는 일을 대 역사라고 자랑한다. 그렇게 우리의 생각은 길들여져 왔다. 그러나 그것보다 큰 일은 높이 쌓아 가는 것이 아닌 깊어지는 것이다.우리의 생각이 깊어지고. 영혼이 깊어질 때에 사람은 아름답다. 깊어 가는 가을에 창고에는 열매가 거두어져 저장되어 있는 것처럼 내면을 깊이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게서 풍성함과 진정한 평안과 쉼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내면의 깊이를 바라보는 고단한 작업이다. 외롭고 고독한 일이다. 누구도 같이 거들어 줄 수 없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다. 깊이가 없으면 집은 무너지고. 나무는 뿌리뽑히듯이. 깊은 자기 성찰이 없는 사회는 소망이 없는 사회이다.가을. 점점 비어져 가는 들녘에서 비움의 진실한 교훈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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