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김윤세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느 길을 선택해서 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과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길에는 큰 길도 있고 작은 길도 있는가 하면 돌아가는 길도 있고 질러가는 길도 있다. 평탄한 길도 있고 험난한 길도 있으며.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다른 많은 사람들이 간다 하더라도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고. 아무도 가려 들지 않는 가시밭길이라 해도 더욱 중요한 가치와 공익(公益)을 위해 반드시 가야만 할 길도 있다. 각자 제 갈 길이 있는데 어떤 이는 잔뜩 욕심을 부려 엉뚱한 길을 선택해 화(禍)를 자초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잔꾀를 발동하여 질러가는 길을 찾아 위태로움을 무릅쓰고 가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제가 가야 할 길을 올바로 안다’는 것은 일이십 년 공부해서 터득될 일도 아니고 돈이나 권력으로 해결할 일도 못된다. 누구 말처럼 남에게 ‘머리를 빌려’제 갈 길을 찾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면 ‘길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숨을 거두고 눈빛이 땅에 떨어질 무렵(眠光落地). 자신이 걸어온 인생노정을 돌이켜 보면서. 함께 길을 걸었던 도반(道伴)의 손목을 지그시 잡은 채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또 다른 세계로의 길 떠날 채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삶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그 정도의 삶은 되어야 만이 지상(地上)에 다녀간 ‘빛의 삶’을 사셨던 많은 분들의 고장으로 가서 합류(合流)할 수 있지 않겠는가. “큰 길은 매우 평탄한 데도 사람들은 지름길로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大道甚夷而人好俓) 조정에는 인재가 없고 밭은 묵었으며 창고는 비었음에도 하는 짓들은 화려한 옷치장에 좋은 칼 차고 으스대며 음식은 배터지게 먹고 재물은 한껏 낭비해 댄다. 이는 제 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잘난 체 하는 짓이므로(是謂盜?) 바른 길이 못된다(非道也)” -도덕경 53장-마치 요령과 편법이 판을 치는 요즘의 세상을 예견하고 설파한 가르침처럼 느껴지는 것은 진리의 언어(法語)란 본시 시공(時空)을 넘어 여여(如如)히 빛을 발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외부 세계로만 치닫는 눈길을 내부세계로 돌려 제 갈 길을 찾기 위해서는 노자가 누차 강조한 대로 비움과 고요함을 기본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다른 것들로 채워진 그릇에는 정작 담아야만 할 가치 있는 것들을 담을 수 없고 고요함을 잃으면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중요한 것들을 시종여일 유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비움의 극치를 이루고(致虛極) 최대한의 고요함을 유지한다(守靜篤). 만물이 번성하여도 나는 원점으로 돌아갈 것을 (미리) 본다. 어떤 것들도 일시적 영화를 거두어 뿌리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것을 고요함이라 하고(歸根曰靜) 그 고요함을 자연계 질서로의 복귀라 하며(靜曰復命) 자연계 질서로의 복귀를 정상이라 하고(復命曰常) 그 정상을 아는 것을 밝음이라 한다(知常曰明). 그런데 어떤 길이 정상인지를 모르면 화를 부를 엉뚱한 길로 가게 된다(不知常 妄作凶). 정상적인 길. 큰길. 제가 가야만 하는 그 길로 간다면 오래도록 무사히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게 되고 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위태로울 일이 없게 된다(道乃久 沒身不殆).”도덕경 16장의 이 구절이 시사하는 대로 우리네 삶의 길을 방향 잡아 나간다면 최소한 길 걷는 도중에 봉변을 당하는 위태로울 일은 면할 것이고 더 나아가 오래 오래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음으로써 마침내 밝은 세상. 또 다른 차원의 좋은 세상으로 들어서리라 생각된다.‘길’로써 비유를 삼아 얘기하면 다른 모든 사안에 대해서도 미루어 짐작하기가 좋은 법이다. 즉 인체 생명의 원리에 따른 바른 섭생만이 주어진 수명(天壽)을 건강하게 온전히 누릴 수 있는 큰길임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뱀 쓸개나 해구신(海狗腎). 기타 정력제를 마구 섭취하고 일시적 쾌락에 혼백을 뺏겨 기력을 소진하는 깃은 ‘상도(常道)를 모름으로써 재앙을 부르는(不知常妄作凶)’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정도와 원칙을 벗어난 지름길 행(行)을 고집한다면 예기치 못한 봉변을 당해 중도에 좌절하게 되는 인생을 스스로 만드는 꼴이 되리라. ‘큰 길 가면 오래도록 먼 길을 가더라도 목숨이 다할 때까지 위태로울 일이 없을 것’이라는 노자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우리 모두의 ‘건강나침반’으로 삼기를 제안해본다.<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