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관계를 맺어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 홀로 존재하며 살아갈 수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늘이 맺어준 부모. 형제간의 관계. 학교에 가면서 맺는 친구. 사랑하는 사람 연인. 사회생활하면서 맺는 직장 동료. 한 마을에 사는 이웃사촌 등 우리가 깊은 산 속에 홀로 살아가지 않는 이상 많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행복과 불행을 경험한다.관계가 인간에게 필수적이라 한다면 우린 이 관계를 잘 유지할 필요가 있다. 조직. 공동체. 마을 등에서 벌어지는 갈등들은 관계의 흐름이 깨질 때 발생한다.어떻게 하면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지체 장애우들과 함께 지낸 영성가 헨리 나우웬 신부는 좋은 것을 말해주는 것을 권한다. 기독교에서 많이 쓰는 축복(Blessing)이라는 말은 복을 빌다(to bless)의 명사형이고 이것은 라틴어로는 ‘베네디체레’(benedicere)다. 많은 교회들에서 쓰이는 ‘축도. 강복’(benediction)이라는 말이 문자적으로는 ‘잘(well. bene) 말하다(speaking. dictio)’. 또는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말하다’를 의미한다. 나 자신에 대해 좋게 하는 말을 들을 필요가 있다.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좋은 말은 자신과 상대방에게 위로와 격려가 된다. 그 좋은 말로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상대방이나 자신에게 부정보다는 긍정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을 말해주면 서로의 관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헨리 나우웬은 이것은 단순히 “우리는 서로 긍정해줄 필요가 있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긍정(affirmation) 없이는 살기가 힘들지만 그것은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 정도가 아니다. 누군가의 재능이나 잘한 일을 지적하는 것 정도. 누군가에게 빛을 비춰주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빌어주는 것이 긍정하는 것이다(To give a blessing is to affirm). 그 사람의 잘나고 못난 것을 떠나 그저 한 사람의 그 자체의 사랑스러움에 대하여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 신비로운 것은 이런 축복의 말은 그 말의 내용을 현실로 창조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상호칭찬이 있고 그만큼 많은 상호비난이 있다. 복을 빌어주는 한 마디 말은 칭찬과 비난. 덕과 패덕. 선행과 악행의 분별을 넘어선다. 축복은 상대의 중심에 있는 선성(善性)을 건드리고 그의 사랑스러움을 불러낸다.(헨리 나우웬)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축복의 언사는 영원 전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의 표현이다. 그것은 우리의 참 자아(true self)에 대한 아주 깊은 긍정이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상대방에게 주는 깊은 긍정과 표현은 우리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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