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 길’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의 선선함 때문에 청량한 느낌으로 가득했다. 9월 5일의 함양 백운산 산행에 동참한 30여명의 산행객을 태운 버스는 오전 8시10분경 함양 보건소 앞을 출발해 40분쯤 뒤에 산행기점인 원통재. 일명 빼빼재에 도착했다.바르게살기 함양군협의회 김 철서 회장을 위시하여 한국전력 함양지점 김 영각 지점장 등 참석자들은 서로 간단하게나마 자기소개를 겸한 수인사를 나눈 뒤 김밥과 간식을 챙겨서 9시 5분. 백운산 정상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도로변의 가파른 언덕에 놓인 나무계단을 지나 비탈진 길을 약 50여m 오르니 그 뒤부터는 능선 길답게 완만한 흐름을 이어간다. 전망 좋은 곳에서는 잠시 숨을 돌리며 쉬기도 하다가 소폭의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대방령을 지나 약 1 시간가량 걸으니 조그만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앞서 걷던 김철서 회장께서 그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었다. 서래봉 조금 못미쳐 하나의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는 곳으로서 출발점에서 4km 거리인데 누군가에 의해 ‘비조봉(飛鳥峯)’으로 불린 바 있다는 김 회장의 설명에 따라 앞으로 비조봉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고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비조봉을 출발해 서래봉(1157m)을 지나 내리막길을 조금 걸으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함양군에서 세운 '←백운산 1.3km→하산길(원통재)→하산길(백운암) 4.4km'임을 알리는 표지목이 나타난다. 원통재에서 정상까지의 거리가 총 5.8km이므로 이곳 삼거리와 원통재간의 거리는 4.5km라는 계산이 나온다.선두 팀은 벌써 11시경 정상에 당도했다는 무전연락이 왔다. 뒤이어 11시 20분 무렵 모두들 백운산 정상에 도착해 술과 안주 등 약간의 제물을 진설한 다음 다 같이 모여 정상에서의 산제(山祭)를 지내며 ‘안전 산행과 심신(心身)의 건강을 기원’했다. 정상부에는 함양군에서 세운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쓰여진 표지목이 있었고 조금 아래 지점에는 산림청에서 세운 백운산 정상을 알리는 표석이 위용을 자랑하면서 이곳은 백두대간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도 해발 1278.6m이고 경도 127도 37“ 39”. 위도 35도 36“ 39” 임을 표시해주고 있다.산림청 표지석을 배경으로 모여 앉거나 서서 기념촬영을 한 뒤 중봉 방향 20여m 지점의 숲 그늘에 빙 둘러앉아서 곡차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며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산상에서의 대화를 이어갔다. 식사를 마친 후 함양고등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근무하는 장 정희 씨는 허영자 시인 등 함양문인들의 시 여러 수룰 낭송하여 백운산의 가을 정취를 더욱 실감나게 하였다.하산에 앞서 한 참가자의 제안으로 당초 상련대-묵계암 코스로 내려가려는 계획을 수정하여 중고개재를 경유. 중기마을로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정상에서 남쪽의 중봉 방향으로 조금 걸어내려 가다가 ‘←하산길 4.2km. →백두대간(중재)’으로 표기된 분기점의 함양군 표지목이 나옴에 따라 백두대간 길로 접어들어 하산 길을 이어간다. 20분쯤 걸으니 '←백운산 0.8km. →중재 1.7km'로 표기된 서부지방산림청의 표지목이 나오고 20여분을 더 걸으니 '←백운산 1.6km. →중재 0.9km'로 표기된 서부지방산림청의 표지목이 다시 나타난다. 평평한 지형인데다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면서 호젓한 분위기를 자아내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쉬어가자며 앉을 자리를 찾아 앉는다.누군가 지난 7월 산행 때 ‘남덕유산 정상에서의 건강특강’을 거론하며 ‘건강에 도움 될 한 마디’를 청하는데 거절할 분위기가 아닌지라 중국 당나라 때의 전설적인 존재 ‘한산(寒山)’의 시 세 수(首)를 읊조린 뒤 한산이 추구하는 ‘자연주의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부연 설명을 곁들였다.한산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산이라는 곳은 너무나도 춥고 배고픈 곳이지만 한산은 자신이 머무는 그곳을 이상적인 세계로 여기면서 유유자적 초탈한 삶을 구가하다가 어느 날 홀연 바위를 가르고 그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 ‘한산의 전설’이다. 그가 머물렀던 천태산 곳곳의 나무와 바위에 그가 새겨놓은 시는 대략 3백여 수에 달하는데 그중 그의 사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 세 수를 소개한 것이다. 번역은 필자 나름의 풀이인 만큼 완벽하지 못함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사람들이 한산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한산 가는 길은 열려있지 않은데…여름날에도 얼음이 녹지 않고해 뜨면 안개가 자욱하다네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왔을까?그대들과는 마음이 다르다네그대들의 마음이 나와 같을 수 있다면그대들은 이미 그곳에 있을 것을…한산으로 가는 길에 오른다한산 가는 길은 끝이 없구나계곡은 긴데 수많은 돌로 뒤덮여 있고시내는 너른데 풀들이 우거졌구나소나무 내는 소리. 바람 때문이 아니고이끼가 미끄러운 건 빗물 탓이 아니라네그 누가 세상의 번잡스러움을 초월하여함께 흰 구름 속에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사는 집은 푸른 바위 밑에 있고 뜨락이 무성해도 풀을 베지 않는다네새 등나무덩굴은 축축 늘어지고오래 된 바위는 높이 솟아 있다네산 과일은 원숭이가 따 먹고연못 속의 물고기는 백로가 물고 다니네선가(仙家)의 책 한 두 권을나무 밑에서 소리 내어 읽는다네 人問寒山道 寒山路不通 夏天冰未釋 日出霧濛朧 似我何由屆 與君心不同 君心若似我 還得到其中登涉寒山道 寒山路不窮 溪長石磊磊 澗濶草濛濛松鳴不假風 苔滑非關雨 誰能超世累 共坐白雲中家住綠岩下 庭茂更不芟 新藤垂繚繞 古石竪巉岩山果獼猴摘 池魚白鷺銜 仙書一兩卷 樹下讀喃喃한산의 시 세 수와 한산이 추구하는 자연주의의 의미에 대해 짤막한 설명을 하고 나자 백운산 정상에서 시를 읊었던 장 정희 시인이 다시 시 한수를 읊조리며 그 시에 운률을 얹어서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여전히 매미들은 “맴(마음)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맴맴맴맴” 하면서 선사(禪師)들의 법문을 대신 읊어대고 있다.매미 소리를 뒤로 한 채 다시 하산 길에 올라 10여분 걸으니 '←중치 1.7km. →백운산 2.9km. 중고개재(730m.755.3m)'라 쓰여진 산림청의 표지목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니 약 20여 분만에 오후 2시경 중기 마을에 당도한다. 중고개재의 고도는 다른 자료에 해발 755.3m로 표기되어 있다.이날의 산행은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전국에서 모인 30여명의 산 벗들이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의 청량함 속에 평균 해발고도 1천m의 능선 길을 네 시간 남짓 걸으면서 잠시나마 속진(俗塵)을 벗어나 ‘흰 구름 산’의 선계(仙界)에서 노닐었던 의미 있는 행보(行步)의 하나로 기억될 듯싶다. 다시 한 번 산행에 동참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백운산에서 발행인 김윤세>